전경련의 정체성이 의심받고 있다. 본래 취지와 달리 정권과의 밀착으로 회원사를 압박하고 각종 준조세에 달하는 기부금을 모금하는 창구로 변질됐기 때문이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전경련이 알게 모르게 관여해 모은 돈의 규모는 어마어마하다. 최근 논란이 일고 있는 미르, K스포츠재단과 관련한 774억원은 어떠한 변명의 여지도 없어 보인다. 더불어 청년희망펀드 880억원, 지능정보기술연구원 210억원 등의 정권치적용 사업에 전경련이 동원됐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일각에서 의문을 제시하는 17개 지역 창조경제혁신센터까지 합치면 그 규모는 더 늘어난다. 표면적으로 볼 때는 경제단체의 맏형 격인 전경련이 선의와 자율로 나선 것으로 알려진다. 말 그대로 경제계의 큰 역할을 하는 단체로서 회원사의 사회적 공헌을 위해 이런 대규모 기부사업을 벌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행위를 순수하게 받아들여 박수를 치는 회원사가 있을까? 일반적으로 회원사 이익을 대변하는 단체로서의 순기능은 이제 전경련에는 없는 것 같다.

전경련의 이런 애매모호한 정체성에 대해 의문을 갖는 기업들이 많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전경련이 정부의 요청을 받고 돈을 걷는 역할을 한다고 얘기한다. 모금하는 자금의 용처를 알 수도 없고 일려고도 하지 않는다는 게 대기업 관계자들의 증언이다. 이들의 발언을 종합해보면 정부가 전경련을 통해 기업의 팔을 비틀어 각종 준조세를 걷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개발경제시대의 구태를 다시 보는 느낌이다.

과거 물밑에서 아니면 강압적으로 오가던 검은 돈이 지금은 자율이라는 형태로 조금 우아해진 것일 뿐이다. 전경련이 왜 이렇게 타락하고 변질 됐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나라 권력구조가 퇴화했기 때문이다. 권력이 스스로를 사회 위에 군림하고 있다고 인식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실제 권력자 주변에서 이런 전근대인 인식을 갖고 기업을 옥죄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기업은 스스로 피해자로 전락해 권력의 눈치를 보지만 탁월한 수완으로 권력의 뜻을 거스르지 않고 실속을 챙긴다. 대기업 우선정책이 그것이다. 결국 면세점사업이나 주파수할당, 재벌총수 사면 같은 각종 의혹이 생겨나는 이유다. 결국 초록이 동색인 셈이다. 과거와 달라진 게 있다면 개별기업 차원에서 추진되던 권력과의 유착이 대기업을 대변하는 단체인 전경련 차원에서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동안 애써 외면하던 전경련의 정경유착 고리가 수면 위로 드러났다. 발단은 미르, K스포츠재단 설립자금이지만 그동안 켜켜이 쌓인 각종 의혹들이 한꺼번에 지탄을 받는 것이다. 전경련이 최근 미르, K스포츠 재단의혹이 일자 멋대로 재단을 해산하고 새 통합재단을 만들겠다고 나서는 등 본분을 벗어난 행동이 촉매가 됐다. 여야를 막론하고 전경련을 해체하라는 요구가 나오는 이유다.

전경련이 해체된다고 하더라도 뿌리 깊은 정경유착의 고리가 해소되지는 않을 것이다. 권력이든 기업이든 은밀한 손길에 대한 욕구가 쉽사리 없어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부질없고 공허한 외침이 될지 모르겠지만 이런 고리는 과감히 단절해야한다. 권력은 당장 민간기업의 돈을 걷어 치적을 쌓으려는 유혹에서 벗어나야하고, 기업은 권력의 힘을 빌려 공정한 경쟁을 하지 않는 특혜를 얻고자 하는 탐욕을 버려야한다.

국가를 위해 필요한 재원이라면 투명하게 예산을 편성해 집행하고 그 재원은 세금으로 마련돼야한다. 재원이 모자란다면 법인세나 소득세를 정당하게 올려서 마련하면 될 일이다. 애매한 준조세를 부담하기 보다는 떳떳하게 세금을 납부하는 게 기업의 입장에서도 깔끔하다. 권력이 애매모호한 자세로 통치자금격인 준조세를 늘리기 보다는 법 테두리 안에서 세원을 확보하는 게 정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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