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도 정부예산이 사상 첫 400조원 시대를 맞이하게 됐다. 2011년 이명박 정부 때 300조원을 돌파한 지 6년 만에 100조원이 증가했으며, 2005년 노무현 정부 때 200조원 고지를 찍은 지 불과 12년 만에 정부지출이 2배로 불어났다. 과거 김대중 정부 때 첫 100조원 시대를 연 이래 현 정부에 이르기까지 나라살림이 100조원씩 증가했다는 결론이다. 정부는 ‘확장적 예산’이라는 분석이지만 찬찬히 살펴보면 한국경제가 직면한 저성장 국면을 돌파할 ‘슈퍼예산’인지 논란의 여지가 있다.

사상 최초 복지예산 130조원, 일자리예산 17조5000억원 등 절대규모로만 보면 ‘슈퍼예산’이라 할 만하다. 하지만 정부가 의도한 만큼 경기부양효과가 나오지는 않을 것이라는 걱정들이 쏟아진다.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추경을 포함한 올해 총지출 395조3000억원에 비해 1.4% 늘어나는 데 그쳐 경기 마중물로서 역할을 제대로 할지 의문이라는 것이다. 또한 예산증가율이 내년 목표치인 실질 경제성장률 3.0%, 경상성장률 4.1%에 미치지 못하고 SOC 부문 등 경기파급력이 큰 사업은 쪼그라들었기 때문이다.

정부의 내년 예산 화두는 일자리와 경제 살리기라고 한다. 하지만 고령화 등으로 인한 연금지출 등 의무적 복지지출이 늘어 정부가 재량적으로 쓸 수 있는 예산의 폭은 생각보다 넓지 않은 게 현실이다. 총지출 중 공적연금과 기초연금 등 복지부문 법정지출과 지방이전재원 등 의무지출이 총 195조6000억원으로 전체 예산의 48.8%를 차지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의무지출은 갈수록 늘어나 오는 2019년에는 정부예산의 절반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또한 일자리 예산을 올해보다 10.7%나 늘렸다고 하지만, 이 또한 효율성에 있어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정부주도로 재정을 투입해 밀어붙이는 일자리정책은 근본해법이 될 수 없는 까닭이다. 고용시장의 주역인 기업이 일자리를 만들고, 소득이 늘어남으로써, 내수가 확장되는 선순환구조 안착이 더욱 중요하다. 그러자면 새로운 발상과 획기적인 규제혁파가 전제돼야 한다. 파견규제만 완화해도 9만개의 일자리가 생긴다는 한국경제연구원의 분석이 더욱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현 정부가 임기 초부터 공약으로 내세웠던 균형재정이 물 건너 간 것도 문제다. 저성장 대응을 위한 일자리예산 확대와 내년 대선을 앞둔 일부 선심성 예산배정, 복지확대 등을 중심으로 지출이 크게 늘면서 내년 예산도 균형재정이 불가능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렇듯 균형재정이 무너지는 것은 5년 단임 정부에서 나타날 수밖에 없는 한계로 단기성과를 위해 정부가 확장예산을 편성하려는 유혹을 떨치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국력의 일부이기도 한 국가 재정규모가 커지는 것 자체가 나쁘다고 할 수만은 없다. 하지만 상시적으로 빚을 내 재정을 떠받치면서 국가채무 비율이 계속 상승한다는 것은 문제다. 특히 정부는 올해 세수호조를 반영해 향후 5년간의 국세수입 증가율을 5%대로 올려 잡았다. 늘어난 재정수입을 바탕으로 국가채무 비율도 40%대 초반에서 관리하겠다는 게 정부의 목표다. 그러나 4%대 초반으로 잡은 내년 경상성장률을 감안하면 달성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암울한 전망도 나온다.

어쨌든 나라살림 규모가 늘어나면서 비효율적 예산집행 소지도 커진 만큼 재정효율 개선이 절실하다. 복지지출이 급증하는데도 국민의 복지 체감도는 낮다. 여러 대책에도 저출산, 청년실업은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 이는 정책의 정확성이 떨어지고 돈이 엉뚱한 곳에서 새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예산이 눈먼 돈이 되지 않으려면 이젠 국회가 나설 차례다. 정부는 다음 달 2일 국회에 예산안을 제출한다. 여야는 예산안 심의과정에서 비효율, 낭비성 예산을 꼼꼼히 가려 한 푼의 세금이라도 허투루 쓰이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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