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그동안 동전의 양면 같은 ‘부동산경기 활성화’와 ‘가계부채 증가’ 사이에서 위험한 곡예를 해왔다. 2012년 9월의 재당첨제한 폐지, 2014년 3월의 수도권전매제한 완화, 2014년 7월의 주택담보대출비율(LTV)·총부채상환비율(DTI) 완화조치가 잇따랐다. 특히 당시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는 DTI 완화 등을 통해 가계대출을 확대하는 정책을 밀어붙였다. 대출문턱을 낮춰 부동산경기를 살려보려는 의도였다. 정부의 의도대로 건설시장에는 한 때 훈풍이 불었다. 신규분양과 재건축이 늘어나면서 얼어붙었던 부동산거래가 꿈틀거렸다.

하지만 작용과 반작용은 반드시 같이 존재한다. 부동산시장의 기지개는 곧 가계대출의 증가 속도에 불을 붙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빚더미에 빠진 가계는 소비를 줄였고 내수는 좀처럼 살아나지 못했다. 물건을 만들어도 사려는 사람이 적으니 기업매출도 하향세로 돌아섰다. 자연스럽게 고용창출은 그저 말로만 외쳐대는 공허한 슬로건이 됐다. 부채의 덫에 빠져 경제가 활력을 잃어가자 다시 정부는 가계부채 줄이기가 다급해졌다.

지난 25일 정부는 ‘가계부채 대책’을 내놓았다. 주택공급을 줄여 집을 사기 위해 돈을 빌리는 수요를 줄이겠다는 게 주요 골자다. 하지만 주택공급을 줄이면 집값이 상승해 그만큼 돈을 더 빌릴 수 있기 때문에 효과적인 가계부채 대책이 될지는 모르겠다. 일부에선 이번 발표에 대해 ‘가계대책이 아닌 부동산대책’이라거나 ‘부동산 가격하락을 용인 못한다는 신호’라고 분석한다. 내용을 세밀히 살펴보면 가계부채 축소보다는 부동산부양에 방점이 찍혀 있다는 것이다.

지난 1, 2분기 3% 내외로 집계된 우리 경제성장률은 건설부동산을 빼놓고 보면 1%대로 떨어진다는 통계를 보면 정부의 딜레마를 읽을 수 있다. 성장률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부동산경기하락을 감수 할 수 없다는 게 정부의 속내로 읽힌다. 지난 상반기 건설투자는 전년보다 10.1% 증가했다. 수출과 수입, 내수 모두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지만 건설업과 부동산은 예외였다. 그 결과 상반기 경제성장률은 3.0%로 선방할 수 있었다.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에서 건설투자와 국내총생산(GDP)의 상관관계를 따져보면 좀 더 명확해진다. 지난해 성장률은 건설투자부문을 빼면 2.6%에서 2.4%로 줄어든다. 올해 1, 2분기 전년 동기대비 성장률 2.8%, 3.2%도 건설투자를 제외하면 각각 1.9%로 쪼그라든다. 25일 가계부채 브리핑에서 이찬우 기재부 차관은 분양권전매 제한은 둔탁한 규제로 주택시장이 급격히 위축될 수 있다고 선을 그었고, 금융위 관계자도 DTI 등을 강화할 계획이 없다고 거듭 강조했다.

정부 스스로 부동산과 건설업 경기진작을 통한 성장률 상승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고백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소비절벽에 대한 돌파구가 없다는 점이다. 가계는 부채가 불어나자 씀씀이를 줄였다. 지난 19일 통계청이 발표한 ‘2분기 가계 동향’에 따르면 2분기 평균소비성향은 70.9%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0.7%포인트 떨어졌다. 이는 통계청이 관련 통계를 발표하기 시작한 2003년 이후 가장 낮은 수치다.

정부는 결국 가계부채의 위험을 외면한 채 부동산 경기를 살리는 쪽으로 정택의 무게를 실었다. 이른바 ‘부채에 기댄 경제’를 선택한 것이다. 문제는 이런 선택이 지속가능하지 않고 한계가 보이는 데에 있다. 이번 정부의 선택이 햄릿의 선택장애가 부른 참사가 아니길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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