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가 낮아졌지만 서민들의 은행대출 문턱은 여전히 높다. 시중은행 대출이 쉽지가 않아 상환능력이 취약한 계층이 시중은행 대출금을 소진하고 나면 또 다시 제2, 제3금융권 찾게 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실제로 지난 2분기 제2금융권 대출은 10조4000억원으로 지난해 보다 2.8배나 늘었다. 전체 가계부채도 빠르게 늘면서 사상 최대인 1257조원에 달했다. 이 속도대로라면 연말에는 1300조원을 돌파할 것으로 예상된다.

가계부채 급증이 은행권 여신심사 가이드라인이 적용되면서 비(非)은행권에 대출이 몰리는, 이른바 '풍선효과' 때문이라지만 그 증가속도가 너무나 가파르다. 이자부담이 상대적으로 크기 때문에 가계부채의 질마저 악화되고 있다. '숨은 가계 빚'이라 불리는 자영업자 대출까지 포함하면 넓은 의미의 가계부채는 1500조원이 넘을 것으로 보는 전문가들도 적지 않다. 어쨌든 우리경제를 위기상황으로 몰아갈 수 있는 시한폭탄이다.

가계부채 증가세가 좀처럼 꺾이지 않는 이유는 아파트집단대출 등 부동산대출 영향이 크다. 이에 놀란 정부가 지난 25일 주택공급물량 조절을 통한 대출규제대책을 추가로 내놓았지만 왠지 어설퍼 보인다. 주택공급을 줄여 가계부채의 증가속도를 늦추겠다며 택지공급을 줄이고 아파트 집단대출을 받을 때 소득확인을 엄격하게 하기로 했다. 하지만 분양권 전매제한 강화와 같은 수요관리 대책이 빠져 '집값 떠받치기' 대책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다시 말해 가계부채의 절대총량을 줄여보겠다는 건데, 결국 어정쩡한 부동산규제대책으로 변질되고 말았다. 원리금상환 부담 때문에 소비여력이 줄어드는 가구가 점차 늘어가게 되면 소비가 위축되고 경기회복이 더뎌질 수밖에 없다. 가계부채를 강하게 누르면 부동산시장이 죽어 경기급랭이 우려되고, 지금처럼 '억지춘향'격으로 집값을 떠받쳐 경기불씨를 지펴 나가면 가계부채는 계속 악화되기 때문이다.

또 다른 한계는 이번 대책이 지나치게 부동산 문제에 치중한 나머지 가계부채 폭탄의 뇌관에 해당하는 취약계층 대출문제 등에서 별다른 진전이 없다는 것이다. 이런 까닭에 일각에서는 정부당국이 가계부채 책임 떠넘기기를 하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1%대로 금리를 떨어뜨린 한국은행은 금융정책 탓을 하고 있고, 금융정책을 담당하는 금융위는 주택정책 탓이라며 국토부로 공을 서로 떠넘기는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가계부채의 근본적 해결책인 '소득증대'와 관련해선 '일자리 중심의 국정운영' 등 뜬구름 잡는 대책만 제시했다. 이번 대책은 2014년 최경환 경제부총리 취임 당시 내놓은 '초이노믹스' 연장선상으로 볼 수 있다. 주택경기 불씨를 꺼뜨리지 않는 선에서 가계부채 대책을 고민하다 보니 소극적이고 제한적인 대책이 나왔다. 정작 중요한 수요자 측면의 핵심카드는 건드리지도 못했다는 얘기다.

최근의 가계부채는 가계소득이 정체된 상태에서 늘고 있어 자칫 하위계층부터 원리금 상환능력을 잃는 사태가 벌어질 가능성이 있다. 지난 대선 때 박근혜 대통령은 가계부채 해결을 공약했지만 지난 3년간 가계 빚은 239조원이나 늘었다. 대출규제를 풀어 부동산 경기를 띄우려 한 '초이노믹스'는 빚만 눈덩이처럼 부풀렸다. 얼마 전 국제통화기금(IMF)은 한국이 직면한 경제역풍 중 하나로 가계부채를 제시한 바 있다.

소득증대를 통한 상환능력 제고가 가계부채의 질을 높일 수 있는 근본적인 대책임에 틀림없다. 가계부채의 총량만을 줄이기 위한 임시방편적인 대증요법은 결국 '폭탄 돌리기'일 뿐이다. 근본대책 없이 연내 미국이 금리를 인상하고 내년 상반기에 한국도 금리를 올리면 가계가 빚을 갚지 못해 내년 대선을 전후해 깡통주택과 파산사태가 속출할 수도 있다. 정부가 '폭탄 돌리기'할 수 있는 시간도 이제 다 끝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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