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의 정책 파트너 최순실과 수하들 오기로 버티고 있어…차기 대통령 책임과 사명 그 어느때보다 커져

박근혜 대통령(오른쪽)과 '비선실세' 의혹을 받고 있는 최순실씨. <출처=JTBC 화면 캡처, 포커스뉴스>

"나는 저녁부터 새벽까지 국민을 걱정하는 한 생각뿐이었는데, 이제 그가 잘못 되었다는 비보를 들으니, 참으로 그 사람이 어찌 그렇게 되었다는 말인가? 나와 그는 실로 남은 알 수 없고 혼자만이 아는 오묘한 관계가 있었다. 이 사람은 불세출의 인물이다."

얼핏 들으면 이 문장의 두 사람 관계가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의 뜨겁던 밀월(?) 관계를 말해주는 듯 착각하게 된다. 두 사람이 '실로 남은 알 수 없고 혼자만이 아는 오묘한 관계'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문장은 조선 후기 르네상스의 주역 정조대왕과 채제공의 이야기이다. 채제공이 별세하자 1799년 2월 18일 조선왕조실록 '채제공 졸기'에 나온 글로, 정조가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며 탄식한 말을 사관이 기록해 놓은 것이다.

정조와 영의정 채제공은 '실로 남이 알 수 없고 혼자만이 하는 오묘한 관계'를 유지하며 지냈다. 군주와 관료의 공적 관계이면서도 둘 만의 소통으로 친밀한 사적 관계를 유지했던 사이였던 것이다. 두 사람은 조선의 후기 르네상스를 이룩해 여러 중요한 개혁들을 추진했으며, 특히 당쟁의 핵심적 원인 중 하나였던 이조전랑(吏曹銓郞)의 인사특권(정3품 이하 주요 문신을 추천할 수 있는 권한)과 자대권(自代權: 후임을 자신이 직접 지명할 수 있는 권한)을 개혁해 냈다. 이른바 탕평책이었다.

그의 가장 중요한 업적은 신해통공(辛亥通共)으로, 육의전(六矣廛: 비단 무명 명주 종이 모시 생선 등 여섯 가지 주요 물품을 국가에 독점적으로 납부하던 상점)을 제외한 시전(市廛)의 특권을 박탈해 자유로운 상업 활동을 보장하는 획기적인 조치를 내려 조선 후기의 경제를 크게 성장하게 만들었다는 점이다.

누구는 정책을 펼침에 있어 이렇듯 우수한 인재를 찾아내 어렵던 조선 경제를 살려내는 기가 막힌 묘수를 두었건만 누구는 열등한 인재를 자신만의 고집으로 얻어 '실로 남들은 알 수 없고 혼자만 아는 기도 안 차는 사적 관계'를 맺은 채 우리 정치와 경제의 실상을 이 모양으로 만들고 말았다. 우리 정치 수준을 1979년으로 후퇴하게 만든 장본인들이다. 그 해 박정희 대통령이 세상을 떠났다는 건 누구나 기억할 것이다.

"내가 즉위한 뒤 그에 대한 참소가 빗발쳤지만 뛰어난 재능은 조금도 꺾이지 않았다. 나는 매우 위험한 중에 그를 재상으로 발탁했다. 그 지위가 높고 직무는 국왕과 가까웠으며 총애와 신망이 두터워 사람들이 입을 다물고 기운이 빠지게 했으니 '저렇게 신임을 독점한 사람은 예전에도 거의 들어보지 못했다'고 말할 만했다. 또한 50여 년 동안 벼슬하면서 굳게 간직한 지조는 더욱 탄복할 만하다. 이제는 다 끝났다."

정조의 탄식이었다.

박기현 <한양대 국제문화대학 겸임교수>

조선 태조 이성계와 기획자 정도전, 드센 군주 태종 이방원과 하륜, 명군 세종대왕과 영의정 황희, 임진란 구국의 영웅 류성룡과 이순신 등은 가히 시대의 영웅이라 불릴 만한 이들로, 공적 사적으로도 깊은 밀월을 유지하며 나라를 걱정한 진정한 정책 파트너였다.

이제 2백 수십 년이 지나고 다시 ‘그 지위가 높고 직무가 대통령에 가까웠거나 넘어섰던, 그리고 총애와 신망이 두터워 사람들이 입을 다물고 기운 빠지게 한 최순실이 몰락했다. 그러면 '나도 끝났다고 고백할 것인가? 해볼 테면 해보라'고 오기로 버틸 것인가? 나의 진정한 정책 파트너를 누구로 선택할 것인가는 정치 지도자의 가장 큰 책임이자 사명일 것이다. 다음 대통령 될 자들은 명심하고 또 명심할 일이다. 책임질 자는 책임을 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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