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대통령과 여성차별 문제는 별개… 몸으로 느낄 수 있는 생활형 정책 위해 지속적 투자·적용 필요해

<출처=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우리나라는 과거 신분제 사회였다. 조선시대에는 일반인들도 다 아는 양반(兩班)이라는 지배계층이 있었으며, 그 이전으로 더 거슬러 올라가면 귀족도 존재했다. 역사적으로 일제강점기에 접어들면서 왕이라는 유일적 지배자가 사라졌지만 이 시점 이전에는 항상 왕도 있었다. 

우리가 사회적으로 평등주의와 천부인권사상의 가치를 기본으로 삼으면서 소위 조선시대의 사농공상(士農工商)이라는 신분제가 사라졌고, 이는 우리나라의 급속한 발전의 밑바탕이 됐다.

지금도 선거에서는 1인 1표 제도를 시행하고 있고, 국가와 정부는 모든 국민을 평등하게 대해야 하며, 자신의 능력 부족으로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는 국민이 있다면 그대로 방치하지 않고 이들의 삶을 지켜주도록 법에 명시하고 있을 정도로 우리 사회는 개인의 평등과 인권보호의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 

양성평등 또한 마찬가지로 주요한 평등정책의 주제이다. 여성과 남성, 남성과 여성이라는 생물학적인 차이점을 그대로 인정하면서도 기회와 배분, 여러 지원에 있어서는 결코 차별적인 상황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헌법(憲法)은 물론이고 다양한 제도에서 기본으로 삼고 있다.

◆ 화려한 여성보호정책 이면에 여성인권 기회균등 사각지대 많아

양성평등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우리나라는 제도적으로는 참 잘 되어 있는 나라로 볼 수 있다. 세계 각국에서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운 장관이 배치되어 있는 여성가족부를 갖추고 있고, 양성평등을 교육하는 국가교육기관도 존재하며, 여성단체에 대한 국고 및 지방단체 예산의 지원도 많지는 않지만 지속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아울러 여성가족부에서 내놓은 4대 폭력에 대한 예방교육은 물론 성평등과 성차별적인 행정요소를 제거하기 위한 성별영향분석평가제도도 철저하게 시행하고 있다.

고용노동부에서는 여성채용에 대한 비율과 함께 실제 근로 현장에서 차별적인 요소를 제거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으며, 여성의 사회적 진출과 승진상의 불이익 등을 차단하기 위한 감시와 지도, 처벌에 적극 나서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외관상 보면 명품을 파는 백화점과 같이 우리 사회와 양성평등과 사회적 약자로서의 여성을 보호하는 정책이나 제도 부분에서는 화려한데 반하여 그 이면에는 여성인권과 기회균등의 사각지대가 너무 많다는 사실이다. 외부 인테리어는 백화점이지만 그 안을 들어가 보면 동네 구멍가게 수준이라는 이야기이다.

대구지역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지역 소주회사의 여성차별에 대해 항의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출처=대구청년유니온>

◆ 미혼 여성 채용을 '60년 전통'으로 지킨 지방 소주회사

최근에 한 주류회사의 사건만 보아도 이와 같은 보여주기식 여성정책, 성평등 정책의 허상이 여실히 드러난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주류회사에서 여성 직원들을 대상으로 한 진급상 고용조건상의 심한 차별이 언론에 드러나면서 이 회사의 제품에 대한 불매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이 회사는 대구 경북 지역의 소주 판매량의 80%를 차지하는 대기업으로서 정규직 여성 직원 가운데 생산직은 있지만 사무직은 거의 씨를 말리는 인사정책을 펴서 전국적인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다. 60년 이상의 전통을 가진 이 회사는 사무직 여성 직원을 채용함에 있어서 미혼을 원칙으로 함은 물론, 결혼을 알리거나 결혼하려는 여성 직원에 대해서는 강제적으로 퇴사를 종용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특히 현재 회사 내에서 일을 하고 있는 사무직 여직원 대부분이 나이가 어느 정도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혼인 상태라는 점에서 피해자들이 고용노동부에 고발한 내용이 일정 부분 사실이라는 점을 증명하는 상황이다. 

현재 고용노동부는 남녀고용평등법 위반으로 조사를 하고 이에 대한 처벌을 할 예정이지만 그 처벌이라는 것이 벌금 3000만원 이하이기 때문에 수백억대의 매출을 보이는 유수의 주류회사 입장에서는 이쑤시개로 위협하는 수준에 그칠 수밖에 없다.

분명히 장담하건데 이번 사건을 고발한 내부 여직원은 그 회사의 집단 따돌림과 간부들의 보이지 않는 괴롭힘으로 인해 얼마 가지 못해서 퇴사할 것이 분명하며, 벌금이야 내면 된다는 식의 사고를 가진 사주와 간부들로 인해 상황은 전혀 개선되지 않을 것이다. 이런 부정적인 결말에 대해서 명확하게 예견하는 것은 현재 우리나라 여성가족부나 고용노등부 등에서 여성보호와 성평등을 위해 펼치는 내용들이 대의명분에만 치중하지 실제 사회 속에서나 직장 현장에서 여성들이 체감할 수 있도록 진행되는 부분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대구경북은 물론 전국적으로 해당 소주업체의 제품에 대해서 불매운동에 나서겠다고 벼르는 NGO단체가 해당 업체 입장에서는 무서울 뿐이지 정부의 강제조사나 권고, 시정명령, 과태로, 벌금 등은 전혀 무섭지 않게 느끼는 것이 현재의 상황이라는 이야기이다. 물론 해당 업체에서는 이와 같은 상황에 대해서 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찾아보겠다고 하지만 60년 동안 결혼한 사무직 지원은 무조건 제거대상으로 삼아왔던 기업의 문화가 하루아침에 바뀔 것으로 생각하는 이들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마틴 루터 킹 목사. <출처=pixabay>

◆ 미국의 흑인차별 문제가 대표적인 '토크니즘'

그렇다면 이러한 기업문화나 사회문화가 지속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여성을 남성 밑으로 내려다보는 남성우월주의적 사고 이외에 사회적 '토크니즘(Tokenism)'이라는 무서운 요소가 내포되어 있다. 

사회적 토크니즘은 명목상의 행동이나 요식행위 등을 통해서 차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사고를 의미한다. 예를 들어, 특정 지역 출신이 공직 임명상 차별을 많이 받을 경우에 해당 지역 출신 인사를 골라서 장관이나 차관 등으로 임명하기만 하면 지역편중인사나 지역차별인사의 문제가 해결된다고 믿는 잘못된 맹신(盲信)의 사고체계를 '토크니즘'으로 부르는 것이다.

토크니즘의 대표적인 예는 미국의 흑인차별 문제에서 나타난다. 남북전쟁 이후로 흑인에 대한 물리적 자유는 주어졌지만 사회 전반적으로 교육이나 문화, 정치, 경제 등에 있어서 흑인에 대한 무수한 보이지 않는 차별은 존재했으며, 이를 백인 주류사회는 소수 흑인 엘리트에 대한 중용을 통해 해결방안을 찾고자 했다. 

흑인인권운동의 아버지로 불리는 마틴 루터 킹 목사는 백인들이 일부 흑인들에 대해서 지원과 지지를 해주는 것을 흑인에 대한 처우의 개선이 아니라 토크니즘의 표현이라면서 신랄한 비판을 가한 것으로 유명하며, 이후에도 소수민족과 유색인종에 대한 토크니즘의 문제점이 지속적으로 제기됐다.

걸프전에서 미국이 대대적으로 이라크와 전쟁을 벌이면서 많은 미국 흑인들이 참전하게 되자 콜린 파웰이라는 흑인 장군을 국방부 장관으로 임명하게 전쟁을 치르도록 한 것도 유명한 토크니즘의 사례로 인식되고 있으며, 심지어 현재의 오바마 대통령을 흑인차별을 감추기 위한 가장 큰 토큰(Token)으로 바라보는 시선도 존재한다.

지난해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이 제작한 'Kick The Glass:당신은 유리천장을 아시나요?' 프로젝트. <출처=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 좀처럼 무너지지 않는 한국의 '유리천장'

우리나라도 대통령이 선출직으로 아시아권에서는 민주적 절차에 의해서 사실상 최초로 탄생했지만 여전히 여성에 대한 사회적, 정책적, 경제적, 교육적 차별은 개선되지 않고 있으며, 오히려 여성 내부적으로 계급갈등과 계층격차의 심화 문제가 나타나고 있는 상황이다.

성공한 일부 여성, 남성들과의 경쟁에서 당당하게 승부하여 '오피니언 리더(Opinion Leader)'가 된 여성들이 분명히 우리 사회 여러 부분에서 존재하지만 이들을 하나의 상징적 토큰으로 사용하거나 오히려 이러한 여성들의 성공신화를 차단막으로 사용해 여성의 사회적 진출과 사회적 성공, 직장 내에서의 승진 등을 막고 있지 않는지에 대한 심각한 반성과 고민을 해야 할 시점이 됐다고 생각된다. 

우리가 가장 많은 공부를 해야만 된다고 생각하는 병원의 경우에 소위 메이저급 병원의 장들은 압도적으로 남성이 많으며, 해당 병원의 간호부장이 여성만으로 보임되는 상황이다. 의료계에서도 여성 의료인의 상위 직급으로 진출에 대해서 여러 가지 논의들이 있으나 일부 병원에서 간부 의료인으로 여성 의사를 임명할 뿐이며 여성이 병원장이나 의료법인의 장을 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기업도 마찬가지이다. 기업의 경우에는 과장급까지는 여성을 어느 정도 찾아볼 수 있지만 갑자기 이사로 올라가면 여성이사를 찾아보기가 아주 어려운 경우를 자주 보게 된다. 언론사도 차장급에서는 여성 기자를 어느 정도 볼 수 있지만 부장급이나 논설위원 수준의 고위직에서는 여성 언론인을 찾은 것이 쉽지는 않은 일이다.

<출처=cc0photo>

◆ 여성 대통령·최고액권에 여성…인물 여성차별 개선 아냐

취업이나 특정 조직이 들어가는데 있어서 여성에 대한 차별이 많이 해소된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이들이 조직에 제대로 안착하고 조직 내에서 성장해 주류를 형성하거나 최고위층으로 올라가기에는 아직 멀었다는 점이 우리 사회의 여성에 대한 토크니즘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라고 생각된다.

물론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노력을 통해 남성들과의 공정한 경쟁을 통한 자기발전을 위해 노력하는 여성들이 많이 있다. 하지만 이들이 제대로 조직에서 의사결정권을 행사하고 투명하면서도 발전적인 조직을 꾸려나가기 위해서는 일정한 정책적, 제도적인 지원과 도움이 절실하다고 생각한다.

대표적으로 공공부문에서는 2급 이상의 고위 공직자에 대한 여성비율 할당제도를 전면적으로 시행할 필요성이 있다. 특정 대학 편중현상이나 특정 지역 편중현상, 입직출신별 편중현상에 대해서는 많은 개선책들이 나오고 있지만 남성중심의 고위공직자 편중현상에 대해서는 뾰족한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이미 고시나 7급 및 9급 시험을 통과한 많은 여성 공직자들이 포진하고 있기 때문에 각 직급별로 소수성의 비율을 배정하는 방안을 마련할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된다.

이러한 방식으로 공직의 여성 고위직 비율을 높이는 과정을 거치면 이후로는 교육분야나 의료분야, 기업분야에서도 많은 여성 고위직이나 CEO 등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일부 성평등학자들은 여성대통령의 출현이 오히려 성평등정책이나 여성차별철폐 정책에 독(毒)이 될 수 있다는 우려를 내놓고 있다. 실제로 여성이 대통령이 됐다면 그만큼 우리나라 안에서 여성에 대한 차별은 많은 부분에서 개선됐다고 보는 착시현상이 일어날 수 있음을 경계하는 내용이라고 사료된다. 

염건령 <사회컬럼니스트>

사회적으로 평등한 사회, 기회가 균등한 사회는 발전이 진행될 수밖에 없는 사회임을 명심해야 하며, 여성이 우리 사회를 유지하고 지탱할 수 있는 힘을 제공하고 있음을 인정하고 이들이 자신의 역량을 직장과 가정에서 제대로 보여줄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는 데에 역점을 두어야 한다. 여성대통령과 국내 지폐의 최고액권에 여성이 인쇄되어 있다고 해서 우리 사회의 보이지 않는 여성에 대한 차별이 개선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위험천만하며, 여성가족부와 고용노동부 등의 정부 당국도 여성들이 몸으로 느낄 수 있는 생활형 정책의 마련을 위해 더 많은 연구와 지속적인 투자 및 정책 적용을 하였으면 하는 바램을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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