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최저임금 액수 결정을 두고 협상을 벌였지만 노동계와 경영계가 끝내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올해도 또 다시 법정시한을 넘겼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노·사 위원 간 양보 없는 지루한 줄다리기 싸움만 펼치며 시간만 잡아먹다 결국 시한을 넘기게 됐다. 이로서 최저임금제도가 본격 시행된 1989년 이후 법정시한 내에 노사 양측의 합의로 최저임금이 결정된 적은 단 한 차례도 없게 됐다.

최근 몇 년간 최저임금위원회에서 양측의 협상과정에서 되풀이되는 '1만원 인상 대 동결'은 일종의 선전포고에 가깝다. 양측의 요구수준 차이가 4000원에 가까운 상황에서 인상폭에 대한 본격적인 줄다리기는 이제부터 시작된 셈이다. 최저임금 결정은 다음 달 초에나 이뤄질 것이라는 관측이 높다. 하지만 법정시한을 넘긴 상황에서 아직 양측이 1차 수정안조차 내지 못했다는 점은 앞으로도 양측의 협상과정이 험난한 여정이 될 수밖에 없을 전망이다.

특히 올해는 지난 20대 총선을 앞두고 여야 주요 정당이 모두 최저임금을 현행 6030원에서 9000~1만원으로 인상하겠다는 공약을 내거는 등 '최저임금 현실화' 기대가 어느 때보다 컸던 만큼 협상파행에 따른 실망감 역시 증폭될 수밖에 없다. 여·야간 방법론은 다르지만 공약만 놓고 보면 모두 인상 쪽으로 의견을 낸 상태다. 새누리당은 시간당 8000~9000원,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은 1만원으로 인상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그동안 노동계는 최저임금인상이 저소득층 소득기반 확충과 내수부양의 선순환으로 이어져 경제에 큰 도움이 된다는 주장을 펼쳐왔다. 또한 정치권에서도 최저임금 인상에 대한 공감대가 높아진 만큼 올해를 1만원 인상의 적기로 보고 고삐를 죄는 모양새다. 반면 경영계는 장기화되는 경기침체와 수출부진 상황을 들며 인상에 대한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최근 브렉시트로 인해 대외여건이 더욱 불안해진 것도 경영계에 부담이 된다는 것이다.

올해 최저임금 협상의 파행을 부른 바탕에는 월급·시급 병기, 업종별 차등 적용이란 두 가지 해묵은 쟁점도 있다. 그동안 노동계와 경영계는 이를 두고 서로 정반대의 논리를 펴며 끊임없이 갈등하며 대립해 왔다. 결국 공익위원들이 '시급으로 결정하되 월급을 병기한다. 차등적용은 하지 않는다'는 중재안을 내 표결로 통과시켰다.

한편 미국, 영국, 일본, 러시아 등이 최저임금을 대폭 올린 데다 기본소득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는 가운데 독일 최저임금위원회는 28일(현지시간) 내년부터 적용되는 최저임금을 시간당 8.84유로(1만1045원)로 올렸다. 독일정부는 이에 따라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이를 수용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처음으로 도입되어 시행된 최저임금은 시간당 8.50유로(1만1012원)였고, 이 기준이 적용되는 노동자는 작년 1월 기준 약 400만명이었다.

국회는 29일 기획재정위, 국방위, 환경노동위 등 10개 상임위의 전체회의를 열고 소관부처 업무보고를 받는다. 환노위 업무보고에서는 고용노동부와 최저임금위원회 등이 출석, 법정시한을 넘겨 버린 최저임금 책정에 대해 의원들을 향해 설명할 것으로 보인다. 국민들의 소득수준 개선을 위한 가장 빠른 방법이 최저임금 인상이라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된 만큼 이번 기회에 최저임금 논의를 아예 국회에서 하도록 법률을 개정하는 등 제도를 정비할 필요가 있다.

"6030원으로 김치찌개도 못 먹는데, 6030원으로 영화 한 편 못 보는데, 6030원으로 책 한 권 못 보는데... 최저임금 일만 원이면 내가 이렇게 다르게 살 수 있으니, 다른 사람도 다르게 살 수 있지 않을까?" 최근 한 시민단체에서 '최저임금 1만원과 나의 삶'을 주제로 공모한 글 중 이러한 한 대목이 가슴 시리게 와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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