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면한 한국경제의 현실이 너무나 암담하고 어둡기만 하다. 부실기업 구조조정뿐만 아니라 저성장, 가계부채, 양극화 등 이루 열거하기도 어려운 난관에 봉착해 있다. 일각에서는 조만간 IMF 때와 버금가는 위기가 찾아올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오고 있다. 조선과 해운, 철강 등 기업 구조조정의 후폭풍으로 실업자가 급증하며 고용안정성이 급격히 떨어지고 있다. 게다가 무리하게 대출을 받았지만 원금은커녕 이자만 내기도 벅찬 ‘좀비가계’도 늘고 있다.

기업 구조조정이 화두로 떠오른 이때, 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건전성이 양호한 가계도 구조조정에 나설 시점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빚을 감당할 수 있는 수준으로 줄이고 불필요한 비용을 절감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가계부채는 기업부채에 비해 연체율 등의 측면에서 봤을 때 양호하지만, 앞으로 닥쳐올 '소득절벽' 시기를 대비해 미리 구조조정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가 대출심사를 강화하며 가계 빚 관리에 나섰지만, 지난 1분기에도 가계부채는 20조원 넘게 늘어났다. 게다가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기준금리를 1년 만에 사상 최저인 연 1.25%로 전격 인하하면서 가계부채 증가세에 가속도가 붙을 가능성이 더욱 커졌다. 불확실한 대외여건 등으로 인해 통화정책의 효과가 보장되지 않는 상황에서 금리를 추가 인하한 것이 오히려 가계부채 확대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다.

그 이유는 소득심사를 깐깐하게 하는 가계부책 대책에서 제외된 집단대출이 가계 빚 증가를 주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규제를 피한 대출이 계속 늘면서 가계 빚은 지난 1분기 1220조원을 넘어서며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기업 구조조정에 잠시 가려져 있는 가계부채 문제가 우리나라 경제의 뇌관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는 이유다.

지난해까지만 하더라도 주택담보대출 증가액 가운데 집단대출의 비중은 10% 수준에 불과했지만 올 들어 절반을 넘어섰다. 주택담보대출 증가액 가운데 집단대출 비중이 절반을 넘어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런 마당에 금융위원회는 7월부터 보험에도 은행수준의 여신심사 가이드라인을 적용키로 했다. ‘풍선효과’차단에 나선다는 취지라고 하지만 은행에 이어 보험까지 대출심사를 강화하면 저신용자들이 어디로 내몰릴지 불 보듯 뻔하다.

하지만 금융위원회는 가계부채가 현재까지는 양호한 수준이라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하지만 가계부채를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위험요인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기업부채도 조선, 해운 등 일부 영역이 유독 더 위험하듯 가계 또한 고령자 대출, 자영업자 대출, 저소득자 대출, 제2금융 대출 등 위험한 영역들이 많다는 것이다. 생계형 자금 대출이 많고 금융비용이 늘어나면 다시 빚을 내는 갚는 악순환이 되풀이되는 부채의 질도 문제다.

게다가 전·월세 값이 폭등하면서 주거에 들어가는 비용이 너무 많아 가계가 쓸 돈이 없다. 그래서 다시 빚을 내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대출금리가 올라가면 취약계층부터 부실이 시작돼 상위계층까지 번질 수도 있다. 설상가상으로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실질소득이 지난해 4분기에 이어 2분기 연속 0.2% 감소하고 있다. 지난해 하반기 '반짝' 증가하면서 국내 경기회복을 주도했던 가계소비가 급감세로 바뀌면서 '소비절벽'에 처할 가능성마저 점차 높아지고 있다.

가계경제 구조조정이 기업 구조조정 못지않게 화급한 게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하지만 이에 대한 정부의 대비는 너무나 안이하고 소홀해 보인다. 가계부채 부실화는 부동산경기를 띄워 소비를 진작시키겠다는 정책을 편 현 정부 경제팀이 자초한 업보이다. 정부는 결자해지의 마음으로 파산위기에 몰린 적자가계의 아픔을 달래 줄 치밀한 해결책을 내놓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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