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의 정책집행이 뒤뚱거리는 오리처럼 오락가락하고 있다. 4·13총선 때문에 미뤄뒀던 중요정책들이 잇따라 발표되고 있지만, 민감한 내용들은 시행시기를 다음 정권으로 줄줄이 넘기고 있다. 대부분 이해관계자 사이 갈등이 심하거나 향후 선거에 불리한 영향이 예상되는 정책들로 에너지공기업 기능조정, 미세먼지 대책, 방사성폐기물 처분장 건설대책 등이 대표적 사례다.

박근혜 정부 초기부터 주요국정과제로 추진해온 정책들도 슬그머니 차기정부로 미뤄지고 있다. 강력한 의지를 밝혔던 군인연금개혁은 사라졌고, '저탄소차협력금제도'도 시행시기를 2020년으로 늦췄다. 정부의 이런 행태는 전형적으로 내 임기에는 절대 하지 않으려는 '님트(NIMT: not in my term)' 현상으로 보인다. 이런 기조가 청와대의 생각인지, 아니면 당·정·청간의 불협화음인지 가늠하기가 어렵다는 것이 더 큰 문제다.

정부가 최근 내놓은 에너지공기업 기능조정 방안은 그런 의구심을 갖게 하는데 충분하다. 20개 세부 대책 가운데 석탄공사 처리, 에너지공기업 상장, 해외자원개발 등 핵심과제는 사실상 다음 정권으로 떠넘겼다. 정부가 당초 폐업 운운하던 석탄공사는 노조와 폐광지역 지자체의 강력한 반발로 '단계적 구조조정'으로 봉합되면서 생존불씨를 살려줬다. 내년 상반기 추진키로 했던 에너지공기업 상장도 민영화와 헐값매각 논란에 발목 잡혀 미뤄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석유공사와 가스공사는 핵심자산 위주로 해외자원개발을 구조조정하고 광물자원공사는 단계적으로 철수할 계획이던 해외자원개발 기능조정도 비슷한 상황이다. 담당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도 "기한이 얼마나 걸릴지 예측을 못하겠지만 이번 정부에서는 불가능하다"는 얘기가 나온다. 전문가들도 "공기업 기능조정 같은 민감한 내용은 정권초기에나 강력히 몰아붙일 수 있는 일이지 정권말기에는 노조 등의 반발로 시간만 끌다가 유야무야되는 사례가 많다"고 지적한다.

정부는 이달 초에 박 대통령의 지시로 3주일여 만에 미세먼지 대책들을 발표했지만 정작 민감한 대책들은 손도 대지 못하고 다음 정부로 떠넘겼다. '오염자 부담원칙'에 따라 거론되던 경유값 인상방안도 환경정책평가연구원 등 4개 국책연구기관의 공동연구과제로 넘겨져 2018년 재논의 하기로 했다. 경유차에 환경개선부담금을 물리는 문제도 경유값 논의와 함께하기로 했다. 영세 자영업자나 경유차 운전자에게 큰 부담을 지울 정책들이어서 선거 등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부담이 작용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고준위 방사성폐기물인 '사용 후 핵연료' 처분장 부지선정 문제는 아예 2028년까지 결정을 늦추기로 했다. 서울시내 교통대란을 일으키는 주범 중 하나로 꼽히는 외국인의 면세점 관광버스 불법 주·정차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나온 시내면세점 주차장 의무설치도 2018년 1월부터 시행한다.

취임 초기부터 추진하던 국정과제도 잇달아 연기됐다. 2014년 말 기획재정부가 '2015년 경제정책방향'을 통해 군인연금 개혁의지를 밝혔지만 정치권이 반발하자 이후 발표된 '경제정책 방향'에선 사라진지 오래다. 이산화탄소를 많이 배출하는 자동차구매자에게 부담금을 거둬 배출량이 적은 자동차구매자에게 보조금을 주자는 '저탄소차협력금제도'는 아예 2020년으로 제도 시행을 늦췄다. 이 같은 결정은 자동차업계의 강력 반발에 따른 결정이다.

이처럼 정책집행이 일관성이 없는 것은 '권력누수현상'이 본격화 됐다는 신호로 볼 수 있다. 현 정부가 정책의 책임성을 회피하려는 의도인지, 내년 대통령선거를 의식한 결정인지 단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조속히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자꾸 뒤로 미뤄지면 정부의 정책신뢰도 하락으로 국가경쟁력을 떨어뜨리는 부작용이 우려된다.

저작권자 © 굿모닝경제 - 경제인의 나라, 경제인의 아침!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