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균 국회의장이 불씨를 지핀 개헌론이 점입가경의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이처럼 개헌론이 급속도로 '봉인해제'되면서 정파와 정당을 가리지 않고 개헌발언이 '백가쟁명식'으로 쏟아져 나오고 있다. 야권이 개헌론을 주도하는 가운데 새누리당 친박계 일부도 개헌에 동조하는 신호를 내보이고 있다. 하지만 개헌논의의 필요성에만 여야가 공감대를 이뤘을 뿐 시기, 방식, 방향 등은 모두 제각각이다.

계파진영 논리, 혹은 고도의 정치셈법에 따른 개헌론이 대부분이다 보니 이번에도 '말의 성찬' 속에 또 다시 개헌이 무산되는 것 아니냐는 비관적 전망도 나온다. 내년이면 30년이 되는 '87년 헌법'을 고쳐야 한다는 총론에는 공감대가 있지만 각론에서는 대선 주자별로 동상이몽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청와대와 친박계 주류가 여전히 개헌론 확산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는 것도 걸림돌이다.

유력한 대선주자가 있는 야권은 책임총리제를 앞세운 분권형 대통령중임제 개헌을 선호하지만 국민과의 공감대를 강조하며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반면 강력한 대선주자가 없는 여권에서는 대체로 이원집정부제를 지지하고 있다. 국민이 뽑은 대통령이 외교·안보를 맡고, 국회가 뽑은 총리가 내치를 담당하는 방식이다. 이는 대권주자의 상수가 되어버린 반기문 유엔사무총장 영입을 염두에 둔 것으로도 보인다.

과거에도 정치권에서 수차례 개헌론이 부상한 적이 있지만 지금의 정치적 환경이 어떤 때보다 개헌을 현실화하기에 적기라는 분석들이 많다. 여권의 유력 대선후보가 아직 가시화되지 않았고, 야권이 분열돼 특정 정당이나 후보의 대선승리 가능성이 혼돈상태인데다, 이번 총선으로 3당 체제가 구축되면서 차기 대통령이 어느 당에서 나오더라도 '여소야대' 환경에서 국정을 수행할 수밖에 없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개헌논의가 본격화하면서 상황에 따라 총선을 다시 해야 하는지에 대한 논란도 예상된다. 가령 의원내각제로의 개헌이 이뤄질 경우 기존 대통령제하에서 선출된 의원들이 그 권력을 이어받는 게 타당하냐는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헌법학자들도 정부형태와 권력구조의 개편이 이뤄지면 새 헌법 정신에 맞게 국회를 재구성해야 하느냐를 놓고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최근 한 언론사에서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민 중 69.8%가 개헌론에 공감한다고 답했다. 선호하는 권력구조는 4년 중임 대통령제가 41%로 가장 많았고, 분권형 대통령제 19.8%, 의원내각제 12.8%의 순이었다. 개헌안발의와 의결주체인 국회의원들의 개헌에 대한 공감은 국민보다 더 높게 나왔다. 300명 가운데 83.3%인 250명이 개헌에 긍정적이었고 권력구조 방향으론 절반 가까운 46.8%가 대통령 4년 중임제를 꼽았다.

하지만 개헌논의가 권력구조 개편에만 치중하면서 기본권과 선거구제 개편에 관한 이슈를 간과하고 있다는 지적들도 적지 않다. 한 당이 선거에서 승리하면 다 가져가는 소선거구제의 폐해를 종식시키지 않고서는 망국적인 지역감정을 종식시키고 진정한 국민화합을 이룰 수 없다. 이것이 내년 대선과 맞물린 개헌이 권력구조의 개편을 넘어 기본권과 선거구제 개편으로까지 논의가 확대되어야 하는 까닭이다.

정치권에선 이 모든 사안을 단번에 다루기 어렵다는 이유로 권력구조개편에 국한한 '원 포인트 개헌'을 거론하기도 한다. 또 다른 일각에선 내년 대선출마자들이 개헌공약을 하고, 다음 대통령이 임기 중에 추진하자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생각이다. 개헌은 국회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 찬성과 국민투표를 통해 결정되는 지난한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한번 고칠 때 제대로 고쳐야 한다. 개헌에 관한 국민의 관심이 최고조로 상승하고 있는 지금 청와대와 여야의 협치를 통한 현명한 판단이 기대된다.

저작권자 © 굿모닝경제 - 경제인의 나라, 경제인의 아침!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