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청원 새누리당 의원. <포커스뉴스>

지난달 8일 서청원 새누리당 의원은 국회의장 경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그는 "밤새 이런저런 고민을 많이 했다"며 국회 개원 협상에 걸림돌이 되지 않으려고 불출마한다고 밝혔다.

41일 뒤인 19일 서 의원은 또다시 불출마를 선언했다. 이번엔 새누리당 대표 경선 불출마였다. 그는 기자들에게 배포한 선언문에서 이번에도 "주변의 많은 권유로 고민했다"며 "지금은 제가 나서기보다 후배들에게 기회를 줄 때"라고 말했다.

정치인 서청원에겐 한(恨)이 있다. 2003년 당시 한나라당 대표 경선에서 최병렬 의원에게 진 데 이어 2014년 새누리당 대표 경선에선 김무성 의원에게 졌다.

측근들은 8선으로 국회 최다선에다 친박계 좌장인 그에게 이번 8·9 전당대회는 '삼세판'의 승부가 될 수 있다고 말해 왔다. 공교롭게도 최경환 의원이 7월 6일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필요조건'도 만들어졌다. 친박계 의원들은 서청원 추대론을 띄우며 그에게 대표 경선 출마를 요구했다. 그는 당내 여론과 주위 환경을 살피며 열흘이 넘도록 고심했다.

결과적으로 서 의원은 '삼세판'의 기회를 접어야 했다. 19일의 불출마 선언은 새누리당 대표 자리가 그와 인연이 없음을 다시 한번 증명했다. 불출마 선언문에서 그는 "그동안 대표 경선에 출마할 군번이 아니라고 일관되게 말씀드렸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불출마를 선언하게 된 판단 기준으로 '당의 화합' '정권 재창출'에 이어 '정국의 안정'을 꼽았다. 대표 경선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생뚱맞게 "정국의 안정"을 언급한 데는 이유가 있다.

이틀 전인 17일 총선 참패 원인을 담은 백서가 발간됐다. 비박계는 '친박 2선 후퇴'를 주장했다. 백서에는 친박계의 지원사격을 받은 '이한구 전 공천관리위원장의 독단' '진박(眞朴) 마케팅' 등을 패인으로 지적하는 내용들이 담겼다.

친박에 대한 공격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18일에는 친박 핵심 최경환·윤상현 의원의 4·13 총선 공천 개입 녹취록이 공개됐다. 올 초 서 의원의 지역구인 경기 화성갑에 출마하려던 김성회 전 의원에게 두 사람이 "대통령의 뜻"이라며 지역구를 옮기라고 권유하는 게 녹취록의 골자였다. 김 전 의원이 당시 전화통화 내용을 녹음한 거였다. 압력을 가한 건 최·윤 의원이었지만 화(禍)는 고스란히 서 의원의 몫이었다.

새누리당은 발칵 뒤집혔다. 비박계 인사로 당 대표 경선에 나선 정병국·주호영·김용태 의원은 "핵심 친박 인사들에 의한 공천 개입의 진실이 드러났다. 혜택을 입어 당선된 분이 책임져야 한다"고 화살을 서 의원에게 쐈다. 민심도 끓었다. 서 의원의 불출마 결정은 이런 배경에서 나왔다. 선언문에서 그가 굳이 "정국의 안정"을 언급한 이유다.

친박 좌장으로 불려온 서 의원이 당 대표 경선에 출마조차 하지 못했다는 건 정권 실세그룹으로서의 '친박'이란 명패가 더 이상 훈장이 아님을 절실하게 보여준다. 4·13 총선 패배 후 '친박'은 정치시장에서 팔리지 않는 비인기 품목으로 전락했다. 그 끝이 전당대회를 앞두고 벌어진 최경환·서청원 등 친박계 핵심들의 연쇄 불출마 선언인 셈이다.

박지원 국민의당 원내대표는 김대중 정부 말기에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열흘 붉은 꽃이 없다'는 뜻으로 성한 것이 얼마 못 가서 반드시 쇠해짐)이라며 권력의 무상함을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임기를 1년 6개월여 남겨놓은 상황에서 최경환의 좌절, 서청원의 좌절은 '친박'이라는 단어가 어느덧 주홍글씨가 됐음을 보여준다.

서 의원의 출마를 종용해 온 강성 친박 의원들은 허탈함을 감추지 못했다. 이우현 의원은 전화통화를 녹음한 김성회 전 의원을 겨냥해 "남자의 세계에서 인간 쓰레기 같은 행동을 했다. 출당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김태흠 의원도 "전당대회 직전에 폭로된 것에 불순한 의도가 있는 건 아닌지 우려된다"고 격앙했다.

서 의원은 이날 불출마 선언문의 마지막에 당부의 말을 적었다. "당내 경선은 당의 화합과 치유의 장이 돼야 한다. 새로운 갈등의 씨앗을 심는 경선이라면 정권 재창출은 불가능해진다"고.

그러나 새누리당에선 갈등이 사라지지 않고 있다.

저작권자 © 굿모닝경제 - 경제인의 나라, 경제인의 아침!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