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복을 1년간 입을 것인가, 3년간 입을 것인가"

17세기 후반 현종 재위기에 이런 논쟁이 불거져 조선 사회를 뒤흔든다. 부왕 효종이 승하하자 효종의 계모였던 자의대비가 상복을 얼마동안 입어야 하는 지를 두고 벌어진 '예송논쟁'이다. 당시 조정의 양대 세력이었던 남인과 서인은 이 문제를 놓고 격렬한 이데올로기 싸움을 벌인다.

송시열을 중심으로 한 서인은 1년을, 허목 등 남인은 3년을 주장한 이 싸움의 1차전은 서인들의 승리로 끝났다. 그러나 14년 뒤 이번에는 효종의 비 인선왕후가 죽자 자의대비의 복상 기간을 두고 2차 예송논쟁이 벌어진다. 서인은 아홉 달을 주장했고, 남인은 1년을 주장했다. 이 리턴 매치에서는 1차 논쟁에서의 패배에 절치부심했던 남인이 승리했고, 서인은 권력에서 밀려나게 된다.

지금 대한민국에서는 21세기 판 예송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이번에는 '합창으로 할 것인가, 제창으로 할 것인가'가 쟁점이다. 5·18 기념행사 때 사용되는 '임을 위한 행진곡'을 두고 벌어지는 '창법 논쟁'이다.

5·18이 1997년 정부 기념일로 지정된 이후 이명박 정부 첫해인 2008년까지는 제창하는 방식이었다. 그런데 2009년 1차 논쟁의 결과 합창으로 바뀌었다. 그 이후 5월만 되면 합창이냐 제창이냐를 놓고 8년째 옥신각신하고 있다.

350여 년 전의 예송 논쟁처럼 21세기의 창법 논쟁도 민초들의 삶과는 별 연관이 없다. 솔직히 국민들 중에서 합창과 제창이 어떻게 다른지를 구별하는 이도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처럼 뜨거운 논쟁이 벌어지는 것은 그 이면에 치열한 정치적, 이념적 투쟁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송 논쟁은 형님 소현세자를 대신해 왕위에 올랐던 효종을 왕실의 적통으로 볼 지에 대한 견해 차이에서 비롯됐다. 그리고 그 근저에는 왕권에 맞서 신권을 강화하려는 서인 세력과 왕권을 통해 서인을 견제하려는 남인 세력의 정치적 계산이 깔려 있었다.

마찬가지로 창법 논쟁에는 5·18의 역사적 성격과 '임을 위한 행진곡'이 갖고 있는 정치적, 이념적 함의에 대한 보수, 진보 세력의 시각차가 깔려 있다. 아울러 여당과 야당, 정파 간의 정치적 계산도 작용하고 있다.

이렇듯 마치 350여 년 전의 사림처럼 민생과는 별 관계도 없는 쟁점을 두고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정치권을 보면 가슴이 답답해지지 않을 수 없다.

그나마 한 가닥 위안이 되는 것은 예송 논쟁이 역설적으로 이후 영조가 탕평책을 내놓는 배경이 됐다는 사실이다. 즉 예송 논쟁은 숙종대의 세 차례 환국정치를 거치면서 붕당정치의 폐단을 극명하게 드러냈고 그 치유 방안으로 탕평책이 나오게 된 것이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창법 논쟁'도 예송 논쟁이 그랬듯 향후 국민 통합의 초석으로 발전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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