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채가 많은 가구의 빚이 줄기는커녕 빠르게 증가하고 있어 걱정이다. 저소득층과 고령자는 빚 상환부담이 특히 큰 것으로 나타났다. 19일 한국은행이 내놓은 '상위부채 가계의 특징과 시사점'에 따르면 2012∼2014년 상위부채 가계의 소득대비 부채비율은 30% 포인트나 증가했다. 당시 평균 부채 비율은 9% 포인트 늘었다. '상위부채 가계'란 부채 상환 여건이 열악한 가계인데 전체 가계의 5%와 10%로 설정해 통계를 냈다.

한은은 5% 상위부채 가계의 부채 비율이 2012년 463%에서 2014년 497%로 상승했다고 밝혔다. 같은 기간 10% 상위부채 가계는 부채비율이 374%에서 406%로 높아졌다. 전체 가계의 평균 부채 비율은 133%에서 142%가 약간 늘었다. 빚 갚기에 절절매는 어려운 가구의 부채가 줄어든 게 아니라 오히려 늘고 있는 것이다. 어려운 사람이 더 어려워지고 있다는 뜻이다.

보고서에서 한은은 소득이 낮을수록 상위부채 가계의 부채 비율이 큰 폭으로 증가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저소득층의 대출 미상환 위험이 상대적으로 크고 외부충격에도 취약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예를 들어 금리가 1% 포인트 오를 경우 부채가 적은 가계의 원리금상환액 부담은 큰 변화가 없는데 비해 상위부채 가계는 부채 비율이 2% 포인트 커졌다.

이런 현상은 지난 3월 현대경제연구원이 발표한 '가계부채 한계가구의 특징과 시사점' 보고서에도 잘 나타나 있다. 2015년 '한계가구'는 전체 가구의 15%였다. 한계가구의 연평균 처분가능소득은 3973만원이었는데 빚 원리금 상환액은 무려 4160만원이었다. 소득만으로 빚을 갚을 수 없어 빚을 내거나 자산을 처분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런 가구가 160만 가구나 된다.

부채가 많은 가구의 빚이 빠르게 늘고 있다는 한국은행 보고서나 현대경제연구원의 한계가구 보고서는 공통점이 있는데 어려운 사람, 즉 부채가 많은 사람의 빚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수입보다 원리금 상환이나 갚을 이자가 많아 돈을 빌리는 수밖에 다른 방도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안타깝지만 이런 현상은 엄연히 존재한다.

우리나라는 가계부채가 무려 1200조원을 넘고 있다.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한국의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87.2%다. 당시 17개 신흥국을 조사했는데 한국이 가장 높았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국민 1인당 가계부채는 2400만원, 가구로 치면 대략 6000만원 정도 된다. 이 경우 문제가 되는 것은 저소득층과 고령자들이다.

정부는 저소득층과 고령자들의 부채문제를 어떻게 도와줄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빚이 많은 가구나 저소득층의 경우 신용이 약해 은행은 얼씬도 못하고 고금리로 저축은행이나 대부업체, 캐피탈의 돈을 빌려야 한다. 돈이 있는 사람은 4~5%, 어려운 사람은 20~30%의 이자를 내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이러니 빚을 갚기 위해 빚을 내지 않을 수 없는 노릇이다.

한은은 빚 많은 가계의 대출증가세를 완화하기 위해 대출심사를 강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 저소득층의 부채 구조를 조정하고 고령층의 대출증가도 완화시킬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경제원리를 들이대면 한은의 주장이 맞는다. 하지만 버는 돈 보다 원리금 상환이 많고, 빚을 갚기 위해 빚을 얻어야 하는 사람들에게 대출심사를 강화하라는 것은 현실을 모르는 정책이다.

저소득층과 고령자의 빚 부담을 덜어주려면 우선 이들이 이용하는 저축은행, 캐피탈, 신용카드 대출, 대부업체의 금리를 20% 이하로 대폭 낮춰야 한다. 업자들이 반발하겠지만 저소득층의 빚을 생각하면 강력하게 추진해야 한다. 당장 원리금이나 이자를 갚지 않으면 신용불량자가 되고 부도 위기에 처한 사람들에게 '빚 좀 그만 내라'고 해봐야 아무 소용없다는 것을 정부와 금융당국은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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