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봉균 새누리당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이 총선 공약으로 내놓은 '한국판 양적완화'가 선거판의 뜨거운 이슈로 떠올랐다. 야당은 물론 일부 언론과 경제학자들은 이 공약에 대해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비판의 화살을 쏴대고 있다.

헌데 이런 비판 중 상당부분은 '한국판 양적완화'라는 용어에 대한 선입견과 오해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강 장관이 말하는 한국판 양적완화는 한은이 주택담보대출증권(MBS)을 직접 인수해 가계의 주택담보대출 상환기간을 20년 장기분할로 전환하고, 기업 구조조정을 추진하는 산은의 자금여력을 강화하기 위해 한은이 산은 채권을 인수케 한다는 것이다.

즉 현재 우리 경제의 가장 큰 위험 요인으로 지목되고 있는 조선, 해운 등 주력산업 분야의 부실기업 처리와 가계부채 문제 해결을 위해 한은의 발권력을 동원하자는 얘기다.

그런데 이는 기실 본격적인 양적완화라기보다는 양적완화의 업그레이드 버전인 '표적장기대출(TLTRO)'에 해당된다. 양적완화는 돈이 어디로 흘러갈지를 따지지 않고 무차별적으로 푸는 것인데 비해 TLTRO는 돈이 흘러갈 곳을 정해놓고 푸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큰 맥락에서 보면 1992년 투신 사태 때 동원됐던 한은 특융과도 같은 메카니즘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도 강 장관이 굳이 '양적완화'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은 표적장기대출이라는 낯선 용어보다 유권자들에게 훨씬 더 쉽게 어필할 수 있다는 계산을 한 것이 아닌가 싶다. 만약 그런 생각에서였다면 일단 선거판의 이슈로 부각됐으니 강 장관의 의도가 먹힌 셈이다.

한편 강 장관의 구상에 대해 비판론자들이 제기하는 문제점은 크게 보아 두 가지다.

첫째는 법률적 내지는 기술적 문제다. 현행법 상 한은이 발행시장에서 직접 인수할 수 있는 자산은 국채와 정부보증채뿐이고, 이 중 정부보증채는 국민채권과 한국장학재단채권으로 한정돼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문제는 말 그대로 기술적 문제여서 정부가 국회 동의를 거쳐 산은채와 MBS를 정부보증채권으로 포함시키면 해결된다.

다만 이 경우 정부보증채는 국가채무에 포함되므로 국가채무비율이 높아진다는 또 다른 문제점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이에 대해서는 한은이 산은채와 MBS를 발행시장이 아닌 유통시장에서 매입하는 등의 대안이 검토될 수 있다. 이는 한은의 공개시장조작 대상증권에 산은채와 MBS를 포함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판 양적완화에 대한 또 다른 비판은 이 정책이 실효성이 없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일본의 아베노믹스 사례가 보여주듯 양적완화는 이미 실패한 정책임이 입증됐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에 대한 반론도 없지 않다. 진보성향의 경제학자인 김상조 한성대 무역학과 교수(경제개혁연대 소장)는 31일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강봉균 선대위원장이 제시한 것처럼 산업은행의 채권을 한은이 인수해주는 자금으로 가계부채와 부실기업 문제에 투입하는 것을 추진해 볼 만하다"는 견해를 밝혔다.

김 교수는 또 현재 기준금리에 아직 인하 여지가 있으므로 양적완화를 검토할 단계가 아니라는 일부의 지적에 대해서도 "기준금리 인하는 그 폭이 너무 적어 실효성이 없다"며 강 장관의 견해에 동조했다.

그는 특히 "강 위원장이 제시한 정책들은 지난해부터 한국은행을 비롯, 경제학자와 금융인들 사이에서 논의됐던 이슈"라고 말해 학계와 연구기관 등에서 양적완화에 대한 연구가 상당 수준 진행됐음을 시사했다. 실제로 최근 차기 금통위원으로 추천된 이일형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원장은 작년 7월 기자간담회에서 "내수부진과 과도한 경상수지 흑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특정대상을 목표로 한 QE가 실효성이 있을 수 있다"는 의견을 내놓은 바 있다.

이처럼 한국판 양적완화에 대해서는 비판론 못지않게 지지론도 대두되고 있어 향후 새누리당이 보다 구체적인 방안을 내놓으면 더욱 뜨거운 논쟁거리가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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