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상한 얘기지만 컵에 물이 반쯤 차있을 때의 반응은 사람마다 다르다. 어떤 이는 '물이 반 밖에 없네' 할 것이고 어떤 이는 '물이 아직 반이나 남았네' 할 것이다.

경제지표에 대한 해석도 이와 비슷하다. 같은 지표를 두고도 어떤 이는 긍정적인 신호로, 어떤 이는 부정적인 신호로 받아들일 수 있다.

9일 기획재정부가 발간한 '최근 경제동향 3월호'(일명 그린북)에도 그런 요소들이 있었다. 대표적인 게 수출동향이다. 2월 중 수출은 전년 동기대비 12.2% 감소해 1월(-18.8%)에 이어 또다시 감소세를 이어갔다. 예전 같으면 수출이 두 달 연속 10% 넘는 감소세를 보인데 대해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는 게 정상이다.

그런데 이번에 기재부의 해석은 사뭇 달랐다. 2월 수출 감소폭이 1월보다 다소 줄어드는 등 부진의 강도가 점차 약화되고 있다는 긍정적인 분석을 내놓은 것이다. 이는 지난 7일 박근혜 대통령이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최근 경제 상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긍정적인 측면도 많다"고 했던 발언과 코드를 맞춘 것으로 보인다. 즉 경제지표의 부정적 측면보다는 긍정적 측면에 비중을 둔 분석인 것이다.

물론 앞서 언급했듯이 경제지표에 대한 해석은 보는 시각에 따라 다를 수 있다. 그러나 어떤 시각에서 볼지 그 자체는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

청와대와 정부는 작년 말, 아니 올해 초까지만 해도 경제가 비상 상황이라며 경종을 울려댔었다. 그런데 당시와 비교해 별로 상황이 개선된 것도 없는데 갑자기 긍정적인 시각으로 지표를 해석하니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청와대와 정부가 총선을 앞두고 야당의 ‘경제 심판론’을 차단하기 위해 경제지표를 긍정적으로 해석한 게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도 보내고 있다.

만약 이런 의심이 사실이라면 걱정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정부가 경제 상황을 어떻게 인식하느냐는 기업 등 민간 경제 주체들의 의사결정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건설업체의 경우 정부가 주택 경기를 어떻게 보고 있느냐가 신규 사업을 추진할지 여부에 결정적 요인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제부터라도 경제지표에 대한 정부의 해석은 순수하게 경제 상황에 대한 냉철한 인식을 바탕으로 이루어지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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