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조선해양의 부실을 둘러싼 논란이 결국 '제2의 변양호'를 만들어 내는 모양새로 흘러가고 있다.

그 신호탄은 홍기택 전 산업은행장이 쏘아 올렸다. 그는 지난달 6일 느닷없이 한 일간지와 인터뷰를 갖고 "대우조선 지원안은 청와대 서별관회의에서 최경환(당시 부총리), 안종범(당시 경제수석), 임종룡으로부터 전달받았다"고 폭로(?)했다. 이에 임종룡 금융위원장이 "대우조선에 대한 지원은 나와 홍 전 행장이 협의해 결정한 것"이라며 발 빠르게 진화에 나섰지만 화살은 이미 시위를 떠난 뒤였다.

그 이후로 서별관회의는 '밀실 회의'라는 음습한 이미지까지 덧씌워 지면서 정치적 의혹의 대상이 됐다. 이 지점에서 우선 살펴봐야 할 것은 서별관회의가 야당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과연 의혹의 대상인가 하는 점이다.

서별관회의는 YS정부 말기 때부터 있어왔고, 특히 DJ정부 때 외환위기 극복 과정에서 큰 기능을 했다. 그 취지는 주요 현안을 논의할 때 핵심 부처 책임자들만 모여서 밀도 있게 논의하자는데 있었다. 그러지 않고 관계없는 부처까지 다 모이면 회의가 산으로 가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DJ정부 초기에 서울법대 출신의 모 장관은 대통령 주재 회의가 열리면 자신의 법률 지식을 과시하기 위해 관련부처들이 이미 의견조율을 마친 사안에 대해 뒤늦게 법률적 문제를 제기하곤 해 다른 장관들을 곤란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또 회의 내용의 보안 문제도 있었다. 금융시장에 큰 영향을 미칠 사안들은 핵심 관련자들만 모여 밀실에서 협의하는 게 당연하다. 대표적 사례로 대우그룹에 대한 워크아웃 결정도 휴일에 열린 서별관회의에서 결정됐었다.

이런 사정을 모를 리 없건만 야당은 급기야 서별관회의에 대한 국정조사 방침을 들고 나오기에 이르렀다.

우상호 더민주 원내대표는 5일 원내대책회의에서 "서별관회의를 제대로 한번 파헤치고 조사해서 다시는 그런 일이 재발하지 않겠다는 보장이 있어야 더민주가 국민의 세금을 대우조선해양에 쓸 수 있도록 허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기동민 더민주 원내 대변인도 "정부가 대우조선의 분식회계 징후를 방임, 방조함으로써 부실 규모를 천문학적으로 키우는데 일조했다"면서 "그 중심은 서별관회의였다"고 주장했다. 그는 특히 "새누리당도 국정조사를 통해 진실을 밝히고 책임자를 처벌하는 것만이 모든 의혹을 해소하는 것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결국 서별관회의에 참석했던 최경환·안종범·임종룡 등을 대상으로 업무상 배임 방조 등 형사적 책임을 추궁하고 처벌하겠다는 것이 야당의 의도인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이 경우 가장 만만한 희생양이 임종룡 위원장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순수 관료 출신인 임 위원장은 최경환·안종범 등과 달리 정치적 방패막이가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스스로도 "대우조선 지원은 나와 홍 전 행장이 결정한 것"이라며 책임을 자처했다. 앞서 지난달 초 윤증현 전 재경부 장관이 한 강연에서 "부실기업구조조정 책임을 '불쌍한 임종룡'이 다 뒤집어쓰게 됐다"고 말한 것도 이런 사태를 예견한 발언인 듯하다.

윤 전 장관의 예언(?)이 현실이 될지는 아직 단언하기 이르다. 우려되는 것은 이 같은 논란과 시비만으로도 관료 사회의 '변양호 신드롬'이 더 심화될 수 있다는 점이다. 정책적 판단에 대해 형사적 책임을 묻는 일이 반복된다면 관료들은 책임질 결정을 미루려 들 것이고 정책의 골든 타임을 놓치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마침 브렉시트 등으로 경제의 불확실성이 잔뜩 고조되고 있는 상황이기에 이런 걱정은 더욱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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