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덕 <전 청와대 사회정책수석>

노동개혁 입법이 난관에 봉착해 있다. 노동계와 야당이 강력하게 반대하기 때문이다. 이 상태에서 정부 여당이 일방적으로 입법을 처리한다면 앞으로 상당한 후유증이 불가피할 것이다.
한국노총은 입법이 강행된다면 '9.15 대타협'을 파기할 것이라 선언하였다. 이 경우 어렵게 유지해왔고, 그래도 국가적 위기마다 각 경제주체의 고통 분담에 관한 사회적 합의를 통해 위기를 극복하는데 기여해온 노사정위원회 중심의 사회적 대화의 기반이 뿌리 채 흔들리지 않을까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노동입법 갈등, 이대로는 안된다

노동입법 갈등의 핵심은 비정규직 관련 기간제법 및 파견제법 개정이다. 정부 여당의 기간제 법안은 현재 2년으로 제한되어 있는 사용기간을 35세 이상 근로자가 희망할 경우 2년 더 연장할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기간제 근로자의 동일 직장 근무기간이 길어지고, 이 기간 동안 열심히 일해서 인정을 받으면 정규직으로 전환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또한 이 법안은 기간 연장과 함께 반복 갱신 횟수를 제한하고, 근속 기간이 1년 미만인 기간제 근로자에게도 퇴직금을 지급하는 규정도 담고 있다.
법안의 내용만 본다면 노사 간 이익의 균형을 상당히 고려하였다고 볼 수 있다.

파견제법 개정안은 55세 이상 고령의 고소득, 전문직 근로자의 경우 파견 업종 제한을 폐지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다른 선진국에서 파견 업종의 제한을 완화하여 왔고, 고령 근로자의 고용불안을 감안할 때 이 개정안도 그 자체만으로 평가한다면 합리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 법안에 대해 노동계는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다. 정부안대로 입법이 되면 오히려 개인은 비정규직의 굴레를 벗어나는 것이 더 어렵고, 사회 전체적으로는 비정규직이 증가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노사정위원회에서의 협의 과정에서도 이 문제와 관련해서는 의견이 전혀 좁혀지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비정규직 입법을 포함한 노동5법을 일괄 처리하고자 한다면 자칫 시급하게 입법이 필요한 통상임금 정의 및 근로시간 단축 관련 근로기준법의 개정도 어려워지는 것이 아닌가하는 우려를 금할 수 없다.

근로기준법, 고용보험법, 산재보상법 등 3법부터  우선 처리
비정규직 관련 기간제법과 파견제법은 별도 여야 합의로 입법

그렇다면 이 문제를 풀어가는 다른 대안은 없는 것인가? 노사가 윈윈하며 사회적 대화가 파탄나지 않고 오히려 발전할 수 있는 대안은 없는 것일까?

현실적인 대안은 '9.15 대타협'에서 매우 구체적인 합의가 이루어진 근로기준법, 고용보험법, 산재보상법 등 3법은 당장 통과시키고, 비정규직 관련 기간제법과 파견제법은 여야 합의로 일정 기간 연기하는 것이다. 이 합의에 한국노총의 동의를 얻는다면 더 효과적일 것이다.

만약 이런 합의가 가능하다면 이 기간 동안에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한 다른 대안도 검토해볼 수 있을 것이다.
한 가지 대안은 비정규직이 많은 직종에 대해 고용 및 임금과 관련하여 노사 대타협을 추진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기간제 근무자 중 대표적인 직종은 비서직과 운전기사직이 있다. 이들 직종의 업무는 대체로 상시 지속적이다.
그러나 이들 직종은 직무 내용과 역량이 근속에 따라 크게 변하지 않는다. 즉 근속년수가 길어져도 직무의 생산성이 크게 변하지 않는다.
그런데 과거 정규직 고용계약 하에서 임금은 계속 올라가서 기업에게는 이들의 계속 고용이 큰 부담이 되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상시 지속 업무이지만 대부분의 기업은 이들 직종에 기간제나 파견제 근로를 활용한다.

현행법은 기간제와 파견제 근로자를 2년 이상 계속 고용하면 기간의 정함이 없는 무기계약직이나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거의 모든 기업은 2년마다 계약을 해지하고 새로운 근로자를 뽑는다. 그렇지 않을 경우 사내하도급을 활용하는데, 이 경우 불법 파견 여부를 둘러싼 갈등이 끊이지 않고 발생하였다.

기간제와 파견제 근로자, 직무 연봉제로 전환
기업 임금부담 완화, 근로자 고용안정 보장 가능

따라서 현행법 하에서 기간제 및 파견제 근로자들은 2년마다 회사를 옮겨 다니는 유목민과 같고, 임금은 항상 초임 수준에 머물러 있다.
기업은 기업대로 2년마다 새로운 근로자를 뽑아야 하고, 파견근로자 채용 시 상당한 수수료를 부담해야 한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직무의 내용과 역량이 근속에 따라서 크게 변하지 않는 직종에 대해서 고용과 임금에 관한 노사 대타협을 추진할 것을 제안한다. 근로자에게는 고용안정을 보장하고, 기업에게는 임금 비용 상승 부담을 해소해주는 것이다. 

임금 체계를 직무 연봉제로 전환하여 기업의 임금상승 우려를 해소해주고, 고용은 기간의 정함이 없는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해서 근로자에게 고용 안정성을 보장해주는 사회적 대타협을 체결하는 것이다.
기업은 근로자에게 고용의 안정성을 확보해 주고, 노동자는 지금의 정규직처럼 근속에 따라 임금이 올라가는 연공급 요구를 양보하면 타협점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비서직이나 운전기사직 외에도 이와 유사한 직무 성격을 지닌 직종이 많이 있을 것이다. 이들 직종을 대상으로 고용안정과 임금 양보 사이의 타협이 이루어진다면 비정규직 문제의 사회적 부담은 많이 줄어들 것이다.

따라서 비정규직 입법을 둘러싼 갈등과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을 둘러싼 갈등은 훨씬 줄어들 것이다.

종국적으로 비정규직 문제의 해결 방향은 근로자 개인의 사정에 따라서 자발적으로 선택하는 고용 형태가 되어야 한다. 비정규직을 기피하고  열등계급으로 보는 사회적 인식을 불식시켜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비정규직에 대한 각종의 차별을 해소해야 한다. 능력과 생산성에 따른 공정임금을 지급하며, 사회안전망의 혜택을 우선적으로 누리게 하고, 정규직과 동일한 기업 복지가 적용되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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