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협과 협상으로 ‘국가와 국민’에게 희망 심어줘

현 상황이 당시보다 뒤쳐진 것 아닌지 돌아봐야

경제 성장동력 되찾고 위기감서 벗어날 수 있어

 

얼마 전 우리는 굴곡진 현대사를 온몸으로 받아낸 민주화 운동의 ‘큰 산’을 잃었다. 14대 대통령을 지난 김영삼 전 대통령이 지난 22일 새벽 88세를 일기로 서거한 것이다.

김 전 대통령에 대한 공과는 다양하지만 그 가운데 첫손을 꼽으라면 ‘문민시대’의 개막이다. 취임 직후 군대내 사조직인 ‘하나회’를 해체해 군부 통치 시대를 마감하고 새로운 정치의 기틀을 마련한 것은 우리 현대사를 보다 돋보이게 하고 꺼지지 않는 불로 영원히 타오를 것이다.

그의 공로는 민주화에만 그치지 않는다. 공직 부패의 척결을 위해 공직자 재산 공개를 법제화했다. 이와 함께 금융실명제를 전격 도입, 검은돈의 흐름을 차단했다. 그런 점에서 지금 대한민국의 주요 제도와 관행의 상당수가 그의 손으로 틀을 갖췄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러한 기틀 위에 김대중 전 대통령은 ‘국민의 정부’를 출범시켰다. 수많은 비토세력의 견제가 있었지만 김대중 전 대통령의 참여정부는 국민에게 희망과 자긍심을 심어주었다.

IMF로 벼랑 끝에 몰린 우리나라 경제를 온 국민이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는 동기와 실천 방향을 몸소 제시해 대한민국이 세계 경제 12위에 오를 수 있는 터전을 마련했다.

이러한 힘찬 흐름은 노무현 전 대통령으로 이어졌다. ‘참여 정부’라는 슬로건에 맞게 국민 모두가 나라를 걱정하고 올바르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방향타 역할을 한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는 2009년 이후 우리나라 현대사의 큰 획을 그은 세 분의 대통령을 잇따라 잃었다. 어려운 고비가 있을 때마다 ‘대한민국號’가 흔들림 없이 나아갈 수 있는 방향을 제시했던 정신적 지주를 상실한 것이다.

김영삼·김대중·노무현 등 세 대통령의 이념과 치적에 대해 다양한 의견이 있다. 하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국가와 국민’을 위해 모든 것을 던졌다는 것이다.

세 대통령이 집권했던 당시에도 정쟁과 의견대립은 상존했다. 국회에서는 당리당략을 챙기느라 연일 치열한 설전을 벌였고, 정부의 국정 아젠다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높았다.

하지만 대처 방식은 지금과 사뭇 달랐다. 세 대통령은 물론 당시 국회에서는 국가와 국민의 이익을 위해서는 불리한 협상도 마다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 많은 것을 빼앗기고도 전혀 불편한 기색을 보이지 않기도 했다.

물론 일부에서 ‘밀실야합’ ‘흥정’ 등의 사뭇 거친 말을 들어야 했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원색적인 표현이나 입에 담기조차 힘든 문자가 오고가지 않았다. 오히려 동지의식을 가지고 서로를 격려하는, 혹은 배려하는 자세로 어려운 문제를 풀었다.

여야를 떠나 정쟁으로 치열한 설전을 펼치면서도 뒤에서는 서로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며 ‘토론과 협상’을 이어갔다. 바로 ‘정치’를 한 것이다.

하지만 현재로 눈을 돌리면 답답하다. ‘정치’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정쟁을 넘어 파쟁, 설전이 아닌 혈전, 협상이 아닌 흥정, ‘All or Nothing’이 모든 것을 삼키고 있다.

심지어 ‘배신~’ ‘진실한~’ ‘올바른~’ 등의 말들이 넘친다. 상대방을 인정하지 않고 오로지 나만 옳다는 식의 정치가 난무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오로지 상대방을 핥키고 깎아내려 자신의 입지를 더욱 굳건히 하는 것 밖에는 아무 것도 눈에 보이지 않는다. 또 자신들을 있게 한 ‘국가와 국민’은 오히려 소모품에 불과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현실은 너무나 실망스럽다. 정치는 편을 갈라 싸우는 데 여념이 없다. 모두 진영 논리에 갇혀 서로 ‘반민주’ ‘사이비 민주’라고 헐뜯는다. 대화와 타협은 사라지고 나만 옳다는 아집이 횡행한다. 민주주의를 퇴보시키는 폭력 시위도 난무한다.

성장 동력이 꺼지면서 경제 침체는 외환위기 때보다 더하고, 소득 양극화와 청년실업 등 사회는 총체적 무기력에 빠져 있다.

이런 현실은 김영삼 전 대통령 집권 때보다 오히려 퇴보하고 있다는 위기감을 자아낸다.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됐는지 차분히 되돌아봐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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