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모닝경제=김형수 기자] 

금요일 저녁이면 집 근처 편의점이나 슈퍼마켓을 찾는다. 냉장고를 채운 다양한 맥주를 바라보며 '1만원 4캔'에 맞춰 어떤 조합을 구성할지 고민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인디아페일에일(IPA)을 즐겨마시는 터라 4캔 중에 적어도 두 자리는 언제나 IPA 차지다.

어느샌가 행복한 고민이 조금 더 깊어졌다. 최근 가파른 성장세를 나타내는 국내 수제맥주 업체들이 수입맥주에 버금가는 질 좋은 맥주를 속속 내놓고 있기 때문이다. 카스나 테라 중에 골라마셔야 하는 식당에 가지 않는 다음에야 슈퍼마켓이나 편의점에서는 잘 사지 않았던 국산 맥주를 사는 빈도도 점점 늘고 있다.

어느새 IPA 두 자리 가운데 한 자리는 국내 수제맥주업체 카브루가 생산하는 구미호IPA 차지가 됐다. 이전에 IPA를 살 때면 리투아니아의 볼파스엔젤맨IPA, 미국의 구스아일랜드IPA, 독일의 리퍼비IPA 중에서, 돈을 조금 더 쓸 때면 영국의 브루독펑크IPA, 미국의 트위트스티드만자니타카오틱더블IPA 중에서 고르는 게 보통이었다. 구미호 IPA의 맛이 이런 수입 IPA에 밀리지 않으니 자꾸 손이 가는 것이다.

제주맥주에서 양조하는 제주위트에일이나 제주펠롱에일, 핸드앤몰트의 상상페일에일 역시 수입된 에일 맥주에 뒤지지 않는다. 요즘은 편의점 업체와 수제맥주 업체가 손잡고 개발하는 제품도 속속 나오고 있어 새 맥주를 맛보는 재미도 있다.

국산 수제맥주는 '한국 맥주는 맛이 없다'는 편견을 깨고 소비자들에게 다가선 모양새다. CU에서 국산 맥주 가운데 수제맥주가 차지하는 매출 비중은 2018년 1.9%에 불과했으나 지난해에는 11.9%를 기록했다. 지난달 29일부터 지난 4일까지의 국산 수제맥주 매출 비중은 28.1%에 달했다.

국산 수제맥주는 아메리칸 페일 라거 일색인 국내 맥주 시장에서 아메리칸 페일 라거가 아닌 맥주를 선보이며 떠오르기 시작했다. 여행이나 유학을 떠나 유럽이나 북미에서 맛과 풍미가 진한 맥주를 맛본 사람들에게 맛도 향도 옅은, 시원한 청량감을 앞세운 카스나 테라 같은 아메리칸 페일 라거는 입맛과 거리가 있었다. 카브루나 제주맥주는 이들에게 아메리칸 페일 라거가 아닌 선택지를 제공했고, 마셔본 이들의 입맛을 사로잡으며 파이를 키웠다.

최근 수제맥주업체들은 성장세에 힘입어 양조시설을 대폭 늘리며 생산 역량을 키우는 데 힘쓰고 있다. 자칫 대중성을 지향하느라 수제맥주 고유의 색깔을 잃어버리진 않을까하는 우려가 나오는 대목이다.

국산 수제맥주 애호가들이 기다리는 새로운 맥주는 구미호 라거나 제주 라거 보다는 구미호임페리얼스타우트, 제주사워에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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