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광웅 <데이터정치연구소 소장>

새정치연합 혁신위원회가 최근 내놓은 1, 2, 3차 혁신안 중에는 선출직평가위원회 도입이 단연 돋보인다. 외부 전문가들을 평가위원으로 위촉하여 국회의원, 지방자치단체장, 지방의원 등 소속 선출직들의 의정(직무)활동 실적에 대하여 평가하고, 그 성적이 낮을 경우 강제 퇴출도 고려하겠다는 발상이다.

시민단체인 법률소비자연맹은 이미 16년째 국회의원들의 의정활동과 국정감사 실적을 평가하여 순위를 매기고 시상도 해오고 있다. 올해도 어김없이 지난 6월 29일 재보선 당선자 등을 제외한 284명을 평가하여 결과를 발표했다.

본회의?상임위?국정감사 등의 출석률, 대표발의 또는 공동발의법안의 통과성적, 본회의 재석비율, 법안표결 참여율 등 모두 13개 항목에 걸쳐서 점수로 계량화한 것이다.

그러나 이 평가는 기본적으로 정량평가이기 때문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19대 법안발의 상위 1, 2위 의원의 대표발의법안 546건 중 겨우 43건, 즉 7.9%만 통과되고 있는 실정을 보면 의원들의 정성평가 성적표는 매우 부실하기 짝이 없다.

실제로 임기가 10여개월 남아있긴 하지만 7월 10일 현재 19대 국회에서 발의된 의원발의 법안은 총 1만4349건에 가결된 법안은 1694건으로 불과 11.8%이다.

상임·특별위원회의 대안반영으로 폐기된 법안도 2660건(18.5%)에 이르며, 아직 심사 중인 안건 9000여건을 감안한다면 대안반영 폐기법안은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최루탄과 해머까지 등장했던 18대 국회의 경우 총 1만2220건의 법안을 의원들이 발의하여 그 중 겨우 14%인 1663건만을 가결시켰다.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이 번번이 격돌했던 17대 국회가 6387건을 발의해 1352건을 통과(가결 비율 21.2%)시켰던 점과 비교하면 역대 최고의 발의 건수와 최하위의 통과 비율이었다.

18대는 위원회의 대안반영으로 폐기된 법안도 3227건으로 무려 26.4%나 됐다. 이는 의원들의 무분별한 입법발의가 한 원인이다. 각종 시민단체, 언론사 등 수많은 단체에서 국회의원들에 대한 평가가 남발되면서 득점이 손쉬운 입법발의에 눈을 돌린 탓이다.

의정활동 평가를 해온 권위 있는 시민단체라고 해도 개별 국회의원에 대한 정성평가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자칫 개인에 대한 비난이 되기도 하고 지나친 칭찬이 될 수도 있다.

새정치연합의 선출직평가위원회 도입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당내 갈등도 다 정성평가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예를 들어보자. 지난 3월 3일 국회 본회의에서는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 통과됐다. 앞으로 공직자뿐만 아니라 기자 등 언론사 종사자, 사립학교와 유치원의 임직원, 사학재단 이사장과 이사는 직무 관련성이나 대가성에 상관없이 본인이나 배우자가 100만원을 넘는 금품 또는 향응을 받으면 무조건 형사처벌을 받는 것이 주요 골자이다.

그런데 김용남, 권성동, 김종훈, 안홍준 등 모두 4명의 여당의원이 반대표를 던졌다. 또한 총 15명이 기권표를 던졌는데 박주선, 임수경, 최민희, 추미애 의원 등 4명의 야당의원이 포함됐다. 언론자유 침해 등 과잉금지 등을 이유로 들었다.

그러나 2011년 6월 김영란 당시 국민권익위원장이 처음 제안한 이 법을 국민적 여망과 우여곡절 끝에 여야합의로 통과시키는데 소신 반대와 기권이라니. 여야 합의를 어겼으니 평가에서 감점을 매겨야 할 일인가? 그러나 그것은 주관적인 평가일 뿐 누구나 수용할 수 있는 객관적인 기준은 마련돼 있지 않다. 공정하고 객관적인 기준은 유권자의 심판에 달려있지 않겠는가?

미국은 하원의원 재선 비율이 90% 이상이다. 오픈프라이머리(완전국민개방경선제)라는 현역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선거제도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에 더해 ‘The roll call’이라는 독특한 책자가 의원들을 철벽 감시하기 때문이다. The roll call은 우리말로 ‘문제법안 표결현황’이라고 해석되는데 임기 중 쟁점법안, 특히 해당 지역구 관련 법안 표결 현황을 일목요연하게 알려주는 책자다. 선거를 앞두면 서점에서 판매도 하며 누구나 손쉽게 구입할 수 있다. 따라서 당론투표가 없는 미국은 지역구 유권자의 이익이 반하는 법안에 찬성 또는 반대표를 던진다는 것은 곧 재선을 포기하는 어리석은 짓이다.

이와 반대로 우리는 과거에는 제왕적 총재가, 현재는 소수의 계파 보스가 공천권을 독점함으로써 국회의원들은 뽑아준 유권자보다는 계파보스에게 충성하고 있다.

다행히 새누리당이 오픈프라이머리로 공천제도를 바꾸는 당론을 확정하고 새정치연합도 공천혁신안을 마련 중이므로 20대 국회는 분명 달라진 모습을 선보이게 될 터이다. 그렇지만 분명한 것은 자발적인 유권자들의 정책 소비자운동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별무 소용이라는 점이다. 유권자가 직접 의원들을 평가하는 시스템인 미국의 The roll call은 그래서 더 20대 총선부터 적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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