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인(사회컬럼니스트/한국범죄학연구소장)

'메르스'의 사회학

소위 '낙타 독감'으로 불리는 메르스 코로나 바이러스(MERS-CoV; Middle East Respiratory Syndrome Coronavirus) 때문에 대한민국이 큰 혼란을 겪고 있다. 이미 수천 명의 격리 및 자가 격리자들이 속출하고 있고, 사망자와 감염자가 계속적으로 나타남으로 인해 국민 전체가 물리적 바이러스 증세뿐만 아니라 심리적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일종의 집단적 공황장애 현상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물론 꿋꿋하게 일상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들도 많지만 길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마스크를 착용한 사람들이 많아짐에 그만큼 우리 사회의 메르스로 인한 공포감 확산의 문제를 쉽게 볼 내용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과거 사스(SARS)로 불리는 비슷한 유형의 독감증상으로 인해 이웃한 국가들이 홍역을 치르면서 우리나라는 이 상황에서 청정지역임을 다행으로 여겼지만 이는 오히려 보건정책과 보건행정에 있어서 방종과 방만을 초래하고 말았다.

이미 2013년도에 메르스에 대한 대응방안과 지침을 연구를 통해 마련하였지만 이를 실행하는데 정부당국이 미온적인 태도를 보여 왔으며, ‘설마 우리나라에 이와 같은 대규모 유행병이 생길 것인가?’ 하는 안일한 생각이 지금의 난국을 불러왔다고 생각된다.

물론 '인간이 이기지 못하는 병은 없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질병과의 싸움과 투쟁에서 우리 인류는 처절한 사투를 벌여왔지만 유달리 이번 메르스 사태에서만은 우왕좌왕 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정부만을 탓할 수도 없다. 이미 메르스로 확진된 환자들이 해외여행을 가는가 하면, 격리조치를 무시하고 답답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병원을 탈출하는 환자까지 발생하여 우리 국민 스스로 안이한 유행병에 대한 후진적 의식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우리나라의 메르스 광풍(光風)은 자체적인 문제만은 아니다. 이미 세계보건기구인 WHO에서 전문 인력을 파견하여 우리 정부의 메르스에 대한 대책을 심도 있게 살펴보고 있으며, 유행병 전문 인력들이 어떠한 방식으로 대처해야 하는지에 관한 자문과 중요한 자료들을 제공하고 있다.

사건 초기부터 정부가 유행병에 대해 전문성을 가진 국제기구나 이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전문가집단에게 자문과 지원을 요청해야 했지만 그 시기조차 늦은 감이 크다는 점 때문에 국민들의 아쉬움과 정부에 대한 분노의 게이지가 끝까지 상승한 상황이라고 판단된다.

정부라고 해서 할 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사태를 일찍이 경험한 적이 없다는 점에서 혼선이나 혼란은 어쩔 수 없는 뼈아픈 경험일 수도 있고, 일부 영리를 우선시 하는 주요병원들이 정부의 지침이나 지시를 우습게 여기거나 따르지 않은 부분 역시도 정부 당국을 힘들게 한 부분이었을 것이다. 여기에 감염자의 출현속도가 정부가 예측하거나 대응하기에는 너무 빨랐다는 점도 정부만을 탓하는 데는 무리가 따른다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정부는 사태의 심각성에 대해서 국민들에게 최소한 빨리 알렸어야 하며, 향후 상황의 추이에 대해서도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야만 했으며, 지자체가 나서서 이 문제에 대한 정보를 더 적극적으로 제공할 때까지 보안유지에만 신경을 썼다는 비난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것은 분명하다.

이번 메르스 사태를 보면서 대한민국 사회가 보여주는 여러 가지 부정적인 모습들은 이를 개선하고 차후에 동일한 사태가 발생하였을 때, 의연하고 지혜롭게 대처할 수 있는 일종의 면역체계를 구성해줄 것으로 믿는다. 더욱이 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호된 질책 뒤에는 그래도 정부를 믿고 의지하고자 하는 국민들의 실망감이 있기 때문이라는 점을 정책당국이나 담당자들이 알았으면 한다는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도 장관이 복지 분야 전문가라 할지라도 보건복지부라는 이름에 걸맞게 보건문제에 있어서 신속한 모습을 보이지 못한 내용을 잘 살펴서 또 다시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 향후 이 사태가 주는 교훈이라고 사료된다.

메르스로 인한 우리 사회의 문제를 사회학적으로 놓고 본다면 집단적인 일종의 패닉으로 볼 수 있다. 과거 큰 전염병이나 보건적 차원의 재앙을 경험한 적이 없는 우리로서는 홍콩에서 발생한 사스 사태와 같은 심각한 집단적 패닉이 온 것만은 분명하다. 더욱이 정부 당국과 보건의료기관의 우왕좌왕하는 모습과 이기적인 모습을 보면서 과연 국민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아는 사람들인가에 대한 신뢰의 무너짐이 집단적 공황상태의 또 다른 주요한 원인이 되고 있다.

다음으로 의료기관 역시도 사람의 목숨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이를 지켜야 하는 의료기관 본연의 임무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해보는 반성의 기회가 되었다고 생각된다. 그동안 의료분야는 의사수의 급증과 환자수의 감소, 의료기기의 고가화 및 임대료 상승 등의 여러 가지 문제로 인해 생존을 위한 몸부림을 쳐온 것이 사실이며, 그 과정에서 의료보험이 되지 않는 고가의 의료상품 판매나 성형외과와 피부과로의 진료과목 전형 등 많은 문제점들이 누적되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정부당국이나 의료계는 이런 문제들이 생존을 위한 선택일 뿐이라 자위하며 의료 본연의 업무인 사람의 목숨을 구하고 살리는 일에 대해서는 소홀하게 생각한 것이 사실이다.

의료기관의 소극적이면서도 스스로의 업무목적을 무색케 하는 행위들이 여러 군데에서 발견되면서 국민들은 물론 의료계 내에서도 이러한 방식으로는 의료기관이라는 명칭을 붙이기가 창피하다는 자조 섞은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분명히 의사도 생존을 위해서는 부가가치가 높은 성형이나 피부관리 등의 분야에서 일을 하는 것은 맞지만 감염의학이나 예방의학, 외과와 내과 등의 본연적으로 사람을 구하고 살리는 분야에서 일할 수 있는 의사들을 양성하는데 무심(無心)했던 점에 대해서 깊은 반성이 있어야 한다.

아울러 이번 사태에 적극적으로 나선 의료인들의 노력 또한 분명히 존재하지만 이에 대해서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잘못된 희생과 헌신에 대한 낮은 평가는 결코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의료기관에서 일하는 대규모 보건재난 전문의료 인력을 미리 양성해야 함은 물론 평상시에 환자가 많지 않더라도 이들의 생계를 국가에서 책임지고 지속적으로 연구에 매진하도록 함으로써 이번 메르스 사태와 같은 상황이 발생하였을 때 제대로 된 대처를 하지 못하는 상황이 재연되지 않도록 해야만 할 것이다.

교육당국이나 지방자치단체 역시도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모든 내용에 대해서는 중앙정부에 보고하고 이에 대한 지원을 요청하거나 또는 스스로 대처 후에 중앙정부의 추가적인 보상을 받는 식으로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도처에서 정부와 다른 목소리 또는 상반되는 목소리를 냄으로써 국민들의 혼란을 가중시킨 점에 대해서 반성을 해야 할 것이다.

경기도와 같이 격리병원과 지정보건소를 적극적으로 지정하거나 개소하고, 필요한 인력을 실시간으로 전환하여 활용하는 민방위 방식의 대응이 잘 한 대응으로 평가받을 수 있겠지만 대부분의 지자체와 교육청은 목소리만 크게 내고 정작 하는 일은 없었다는 질타를 받아야만 했다.

메르스 사태를 보면서 각 자치정부와 자치단체가 컨트롤 타워(Control Tower)가 없다는 푸념을 내놓으면서 자신들만의 고유한 대응방안이나 대책을 내놓은 것은 언뜻 보면 좋은 내용일 수 있지만 실질적으로 통일된 질병방위에는 도움이 되질 않는다는 점을 분명하게 알아야 한다.

미국의 경우에 CDC(Centers for Disease and Prevention)로 불리는 질병통제예방센터를 통해서 발생한 질병에 대한 상황이 모두 실시간으로 공개됨은 물론 확진자와 감염우려자, 접촉자 등을 전수적으로 확인하여 격리 또는 치료하는 전투적인 방식을 채용하고 있다. 이를 본 전문가들은 흡사 전쟁을 하는 군대와 같다는 표현을 하는데 이는 질병을 하나의 국난으로 보고 전시(戰時)와 같은 상황으로 일을 처리하고자 하는 정부와 국민들의 확고한 의지가 표현된 내용일 것이다.

유럽연합(EU)도 상황은 동일하다. 2013년도에 스페인과 네덜란드에서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메르스 확진자가 발생하였을 당시 아무것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바로 격리조치를 하였음은 물론 추가적인 감염자의 발생을 막기 위해서 방역팀과 역학팀 수백 명이 동원되어 질병의 확산을 막은 바 있다.

아울러 두 국가의 보건당국은 즉각적으로 감염자의 상태와 치료경과 그리고 정부가 하고자 하는 조치 등을 언론에 공개함으로써 무지에 의해서 발생하는 감염의 확산을 막고자 노력하였다. 이와 같이 선진국들은 메르스 뿐만 아니라 순식간에 전파될 수 있는 질병에 대해서 전쟁을 일으킨 적군이나 적국과 같이 처절한 대응모습을 보이며, 이는 바로 국민들의 정부지시에 대한 순응과 협조로 이어지는 긍정적 효과를 보여준다.

우리 정부는 감추기에만 급급한 모습을 보임으로써 정책에 동참하고 협조해야 하며, 잘못하면 피해자가 될 수 있는 국민들에게 답답함만을 안겨주었다. 정책과 행정의 수행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은 국민들의 신뢰이며, 이러한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 정보의 공개와 제공, 그리고 국민들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청취하고 수용하는 방법들을 찾아가는데 더 노력해야 한다.

정치권에서 이미 메르스와 관련한 여러 가지 특별법안을 만들고 있고, 정부 역시도 이제는 안정화된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사태가 진정국면에 이를 수 있도록 여러 가지 노력을 하고 있다.

또한 청와대를 비롯한 여러 고위공직자들이 모범을 보이는 여러 행태를 통해 국민들의 신뢰를 찾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가장 우리와 친하면서도 혈맹으로 불리는 미국 방문까지 대통령이 미룰 정도로 시급하다고 인식하고 결연한 의지와 모습을 보여준 것은 분명히 잘 한 선택이라고 생각되며, 일상생활에서 호흡하면서 같이 고통을 나누고 해결방법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자세를 잃어서는 안 된다.

우리나라는 전세계적으로 그 예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강력한 응집력을 가진 국민성을 갖추고 있다. 이스라엘과 일본, 그리고 우리나라를 세계 3대 집단성 국가로 이야기를 할 정도로 국민들이 잘 뭉치는 것만은 분명하다. 다만 그 상황이 위기 때일 뿐이라는 점이 아쉬운 부분이기는 하지만 여러 국난을 스스로 헤쳐 나가기 위해서 엄청난 노력을 해왔다.

과거 IMF와 같은 경제위기가 발생하였을 때, 전례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IMF 구제금융을 빠르게 벗어났으며, 안보위기 상황에서도 국민들의 의연함이 오히려 북한으로 하여금 도발하고자 하는 생각을 가지지 못하도록 할 정도로 강력한 집단적 의지력을 보여주었다.

어찌 보면 지금의 메르스 사태가 우리 국민들의 결연한 집단력과 희생의지를 보여줄 기회라고 생각한다. 국민들도 스스로 메르스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최소한 본인부터 이 질병에 감염되지 않도록 여러 노력을 기울여야 함은 물론 정부 당국에서 요청하는 내용을 잘 따라야만 할 것이다. 정부도 국민들이 의지하고 있는 유일한 대상이 본인임을 알아야 한다.

정부를 믿고 따르고자 하는 국민들이 실망하지 않고 분노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계속적으로 현장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함은 물론 앞으로 이와 같은 질병재난, 보건재난사태가 언제든지 재발할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인식하고 매뉴얼의 마련은 물론 공적 자원을 효율적으로 운영하고 배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준비에 더 많은 공을 들여야 한다.

외국에서는 우리나라의 메르스 사태를 보면서 대한민국도 저 정도인데 우리나라로 전파되면 큰 일이 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만큼 우리나라가 질병에서만큼은 청정국이며 보건의료수준 역시도 선진국에 비교해도 뒤쳐지지 않을 정도로 훌륭한 수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차별적으로 감염자의 숫자가 늘어나고 사망률이 10%를 넘어가는 상황이 나타나자 이웃한 북한이나 중국도 이 사태에 대해서 촉각을 곤두세울 정도로 우리나라의 사례가 안겨주는 의미들의 파급효과가 크다고 여겨진다.

어느 의료학자는 메르스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이를 통해서 얻는 이익도 얼마 되지 않기 때문에 제약업계에서 치료제조차 개발에 나서지 않았다고 비판하였다. 엄밀한 의미에서 이 학자의 말은 100% 맞는 이야기이며, 전 세계 의료계의 윤리추구성 퇴보에 대한 강한 메시지라고도 여겨진다.

우리는 메르스를 통해서 현재 많은 국민들이 고통을 받고 있고, 이미 많은 이들이 세상을 떠났다. 이러한 일이 또 발생하지 않도록 보건의료분야에 대한 집중적인 투자는 물론 모든 예방과 치료가 장비나 의약에 의해서가 아니라 사람에 의해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간과하지 말고 전문가를 양성하는데 많은 투자를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최영인 <사회칼럼니스트/한국범죄학연구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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