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책신문=한상오 편집국장] 지난해 국회 공전을 거듭하며 가까스로 빛을 본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첫 시행부터 너덜너덜해졌다. 양당정치의 폐해를 끊어내고, 소수정당의 원내진입을 원활하게 하자는 취지는 비례위성정당의 출현으로 무색해졌다. 

한상오 편집국장

미래통합당의 꼼수와 더불어민주당의 자가당착으로 연동형비례대표제는 한낱 웃음거리가 됐다. 당장 4·15 총선을 치러야 하지만 유권자들은 비슷비슷한 당명과 색깔에 어지럽다. 21대 국회가 문을 열면 ‘선거법 개정’을 가장 먼저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진 이유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지난 30일 4·15 총선의 선거보조금 440억7000만 원을 12개 정당에 지급했다. 선거보조금은 선거가 있는 해마다 후보자를 추천한 정당을 대상으로 지급하는 보조금이다. 이날 지급된 선거보조금은 급조된 비례위성정당에도 배정됐다. 지급 하루 전인 29일 미래통합당 의원 3명이 당을 옮기면서 20석의 교섭단체 기준을 가까스로 채운 미래한국당은 61억2344만원을 챙겼다. 더불어민주당이 참여한 비례대표용 연합정당인 더불어시민당도 현역의원 8명을 수혈 받으면서 ‘5석 이상 20석 미만’ 기준을 충족해 24억4937만원을 확보했다.   
 
선거보조금은 ‘정치자금법’ 제27조에 따라 지급시점을 기준으로, 우선 동일 정당의 소속의원으로 교섭단체를 구성한 정당에 총액의 50%를 균등 배분한다. 5석 이상 20석 미만의 의석을 가진 정당에는 총액의 5%를 배분한다. 의석이 없거나 5석 미만의 의석을 가진 정당 중에서도 최근 선거의 득표수 비율 등 일정 요건을 충족한 정당에 대하여는 총액의 2%를 배분한다. 이에 따라 비례위성정당들은 아무런 활동도 하지 않고, 뚜렷한 정책 제안도 내놓지 않은 채 수십억 원에 달하는 국고지원을 받아 챙겼다.

국민의 입장에서는 왠지 도둑맞은 기분이다. 선거를 여러 번 치르면서 정치공학에 이골이 난 정치꾼들이 합법적으로 국민의 혈세를 훔쳐갔다는 의심이 짙다. 향후 재발을 방지하려면 선거법 개정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 특히 정당의 ‘의원 꿔주기’의 주재료가 된 비례대표의원의 의원직 유지에 관한 규정은 이번 기회에 공론화해서 보다 강력하게 정비해야 할 것이다.

‘공직선거법’ 제192조제4항에 따르면 비례대표의원이 당적을 이탈하거나 변경하는 경우 의원자격을 상실하지만, 정당으로부터 제명 결정을 받은 경우에는 그 직을 유지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규정은 역설적으로 당적을 변경하면서도 의원직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 현실에선 이 규정이 악용되면서 제명사유가 명백함에도 당적을 변경하지 못하도록 제명을 하지 못하는 기현상이 초래됐다. 또 비례대표의원이 소속정당을 벗어나 다른 정당의 당직을 맡고 활동하는 행위를 방치하게 됐다.

공직선거법 제192조제4항은 비례대표의원의 잦은 이탈로 인한 정당정치의 불신을 막고 정당 간의 공정한 경쟁구도를 조성하기 위해 마련됐다. 하지만 정당의 이합집산과 그에 따른 당적이탈이 잦아지면서 오히려 탈당에 따른 의원직 상실을 회피하고 특정정당으로 이적하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최근에는 비례대표의원들이 공공연히 소속정당에 제명을 요구하는 코미디가 연출도기도 했다. 
 
비례대표의원이 소속정당이 아닌 다른 정당을 지지하고 그 정당을 위해 활동하는 것은 정당정치질서를 교란하고 국민의 불신을 고조시켜 정당민주주의의 약화를 초래하는 행위다. 이런 행위를 근절해 민주적 정당정치질서를 확립하기 위해선 개선입법이 절실하다.  

이번 기회에 제명된 비례대표의원은 의원직을 상실하는 본래의 취지를 강화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비례대표의원 선출에 있어 폐쇄형 명부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지역구의원과 달리 비례대표 당선인은 그 당선 여부가 소속 정당의 순위배정에 달려 있는 것이다. 따라서 지역구의원이 탈당을 해도 의원직이 유지되는 것과는 달리 비례대표의원은 의원직 상실규정에 차이를 두는 것이 합리적이다.
 
21대 국회에서 다시 논의해야 할 ‘선거법 개정’엔 비례대표의원의 해당행위 및 정당질서 교란행위에 대한 처벌규정을 신설해야 한다. 이는 비례대표의 잦은 당적변경으로 인한 정당정치 제도의 불안정성을 해소하고 국고보조를 받는 정당이 국민의 정치적 의사형성의 기능을 통해 대의민주주의를 제대로 수행할 수 있게 하는 제도적 장치가 될 것이다.

아직 4·15 총선이 어떤 결과를 도출할지는 잘 모른다. 하지만 거대 양당의 당리당략에 따라 급조된 비례위성정당이 상당부분 비례대표 의석을 차지할 것은 자명해 보인다. 이들은 당선되자마자 이합집산을 통해 새로운 정치지형을 만들어 낼 것이고, 그 방향성은 양당정치를 더욱 공고히 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으로 예측된다.

이런 폐해를 고치기 위해 선거법 개정이 필요하다. 거대 정당들이 국민의 정치적 의사형성을 농단하지 못하도록 정비하고 개선해야 한다. 새로운 도전과 실험이 좋은 결과를 낳지 못했더라도 잘 못된 것을 인정하고 개선하는 게 중요하다. 이렇게 민주주의는 국민의 뜻에 따라 개선되고 발전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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