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사우디-러시아의 복잡한 석유 정치경제학

[한국정책신문=최인철 기자]연초 배럴당 60달러대였던 원유 선물가격(WTI)이 20달러대를 맴돌고 있다. 국제유가가 한자릿수로 떨어지는 것이 아니냐는 극단적인 하락전망이 제기된다. 세계 최대 산유국인 미국, 사우디아라비아, 러시아는 유가하락의 원인을 서로에게 전가하면서 비난하기 바쁘다.

유가하락이 3국의 정치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지대하다. 가장 발등에 불이 떨어진 나라는 러시아다. 러시아 석유회사 로스네프치는 푸틴 대통령에게 감산이 어렵다는 내용을 보고해 허가를 받았다고 한다. 물리적, 기술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서시베리아 유정에서 유층압(reservoir pressure)이 낮아져 있어 밸브를 잠그고 감산하면 다시 원유 채취가 불가능하다고 한다. 이에 비해 사우디아라비아 원유 광구의 유층압은 높아서 감산을 위해 밸브를 잠그고 다시 재개해도 문제가 없다. 서시베리아산 원유는 왁스 성분이 많아 파이프라인에서 원유가 항상 흐르지 않으면 파이프 내부에 왁스가 부착되어 막혀버린다. 특히 겨울철에는 원유 안에 포함되어 있는 수분이 얼어붙어 항상 원유를 채취 파이프라인 안에 원유를 흘려 두는 것이 필요하다. 러시아로서는 감산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러시아 경제는 전적으로 유가에 의존하고 있다.  올해 국가 예산에서 상정한 유가(우랄유)는 배럴당 42.4달러였고 정부가 예상한 유가는 57달러였다. 러시아 정계에서 유가하락은 악몽과 같다. 30여년전 소련연방 붕괴에 극단적 저유가도 한몫을 했다. 당시 유가가 배럴당 10달러에서 한때 한자릿수로 떨어지면서 소련 경제가 극심한 부진을 겪으며 정권이 무너지고 러시아연방으로 바뀐 경험때문이다. 

미국도 심각하긴 마찬가지다. 셰일 오일채취기술(수압파쇄법)은 배럴당 40달러 정도가 손익분기점으로 알려져 있다. 셰일 오일은 유정 특성상 채굴수명이 길어야 3년이고 지속적인 채굴이 이뤄지지 않으면 단기간에 생산량이 격감한다.

셰일오일 채굴업체 대다수가 지역별 중소기업들이어서 러시아나 사우디아라비아의 초대형 석유 회사와 규모와 자금력에서 상대가 안된다. 저유가가 장기화하면 수천개에 달하는 미국 셰일오일 기업은 극단적인 도산 도미노에 빠지게 되고 트럼프 행정부를 존속의 위기로 몰아갈 가능성이 높다.

사우디아라비아라고 다를게 없다. 국고 세입의 약 70%가 석유 수입이다. 재정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유가가 배럴당 80달러, 최소한 경상수지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서 55달러가 한계다. 사우디에는 자국만 감산해 유가를 떠받치는 일은 절대 피하겠다는 트라우마가 있다. 1980년대 초반 5년간 하루 약 200~300만 배럴을 감산했지만 다른 산유국들의 배신(?)으로 나홀로 손해를 본 경험이 있다.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추진하는 석유의존 경제로부터의 탈피를 위해 상당기간 고유가가 유지되어야 한다. 정보기술 등 다양한 미래산업을 육성하기 전에저유가가 고착화되면 청년층에 걸맞은 일자리를 창출할 수 없다. 정적제거를 통해 정권을 차지해온 상황에서 저유가가 자칫 발목을 잡아 왕좌를 놓칠 수 있다는 강박도 자리잡는다.

결국 해법은 미국-사우디-러시아의 감산협의다. 문제는 협의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러시아는 미국의 경제재제를 받는 와중이고 6년간 견뎌온 내성을 바탕으로 이참에 미국 셰일오일 생산에 치명타를 입혀 트럼프 행정부를 괴롭힐 각오다.

재선을 염두에 두고 있는 트럼프 역시 야당으로부터 집중포화를 받을 수 있는 러시아와 합의를 주저할 수 밖에 없다.

사우디는 제코가 석자라서 나홀로 감산은 절대 없다는 의지다. 

사우디 아라비아 아람코 석유생산설비/출처=아람코 홈페이지

저작권자 © 굿모닝경제 - 경제인의 나라, 경제인의 아침!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