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신 국평포럼 대표회의 의장

지난해 광화문에서는 조국 성토집회, 서초동 검찰청 앞에서는 조국 수호집회가 열리면서 국민이 두 동강이 난 기분이었다. 한 해를 보내면서 조금은 잦아드나 했더니 이번에는 코로나19 바이러스로 또 국민이 양분되고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대통령을 탄핵하자는 쪽과 이를 반대하는 쪽이 경쟁이라도 하듯 매일 그 숫자가 엄청나게 높아지고 있다. 이러한 현상을 보면서 안타까운 것은 우리 국민이 사사건건 이렇게 양분되고 있다는 점이다.

누가 우리 국민들을 이렇게 갈라놓았는가? 그것은 바로 가짜 보수와 가짜 진보들의 진영논리와 선동 때문이다. 보수와 진보의 참 의미도 모르면서 자기 진영의 정치적 이득을 위해 타 진영을 적으로 규정하여 처단하려고 하는 망상의 결과라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을 정신분석학에서는 자기 진영만이 진리라는 착각을 통해 수단과 방법을 무시하고 목적에만 함몰된 정신이상 징후로 보고 있다.

정치철학에서는 지키려는 입장을 ‘보수(Conservatism)’라 하고 뒤엎으려는 무리에게는 ‘혁명 혹은 급진(Revolution or Radicalism)’이라는 이름표를 부치고 있다. 그래서 프랑스혁명 당시 왕권수호파를 보수로 부르고 민주혁명 세력에게는 혁명이라는 이름표가 붙게 된 것이다. 그리고 당시 프랑스 의회의 우편에는 온건파가 그리고 좌편에는 급진파가 자리를 잡고 있었기에 보수를 우파로 혁명세력을 좌파로 칭하기도 했다. 그 후 왕권이 무너지고 자유민주주의가 대세가 된 후로는 자유민주주의에 보수라 혹은 우파라는 이름표가 붙게 되고 이를 뒤집으려는 공산주의에는 혁명 혹은 좌파라는 꼬리표가 붙게 됐다. 그렇다면 보수와 혁명 혹은 우파와 좌파라는 개념은 특정 사상이나 이념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단순히 지키려는 자와 깨부수려는 자에 붙여진 이름표에 불과하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는 혁명이라는 말은 없고 오직 ‘진보’라는 용어가 보수의 상대어로 사용되고 있다. 추측건대 해방 후 분단 상황에서 자유민주주의를 헌법정신에 담은 대한민국에서는 혁명이란 용어가 거부감을 가져왔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공산주의 이념이 역사는 계급 없는 사회를 향해 나아가는 진보사관을 가졌다는 점에서 사회주의 혹은 공산주의적 색채를 가진 자들이 스스로 진보라고 칭한 것 같다. 완곡하게 말하면 이들은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의회를 통해서 사회주의적 이상을 실현하겠다는 사람들이라고도 할 수 있다.

따지고 보면 진보라는 용어는 매우 애매하다. 어떤 사상이든 보다 나은 사회를 건설하려는데 초점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진보주의(Progressivism)’라는 단어는 존재하지만 정치철학적으로는 민주주의나 공산주의같이 특정한 이념을 의미하는 용어로는 사용되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보라고 하면 ‘앞으로 나아간다’는 의미 때문에 보다 선진적이고, 보수라고 하면 ‘지킨다’는 뉘앙스 때문에 기득권 지키기에 함몰된 의미로 이해될 수도 있다. 오늘날 많은 젊은이들이 진보를 보수보다 더 선호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실제로 우리사회에서 많은 사람들은 보수와 진보의 참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학자들마저도 분명한 정의를 내리지 못하고 가끔씩 애매한 말을 하고 있다. 그러니 가짜 보수와 가짜 진보의 선동세력에 의해 국민들은 양분되고 있는 것이다. 더욱 큰 문제는 서로의 진영들이 자신들을 선으로 그리고 상대는 악으로 규정하고 이 땅에서 몰아내야 한다는 망상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난해한 정치철학의 이론을 떠나서 보수가 지키는 것이라고 하면 우리 사회의 보수는 과연 그동안 무엇을 지켰는가? 자신들의 사적 이익만을 지켜온 것이 아닌가? 또한 버려야만 하는 과거 군사독재의 잔영을 경제성장이라는 미명으로 옹호하는 것은 아닌가? 진보도 마찬가지이다. 무엇을 앞으로 진전시켰는가? 그들은 한때 군사독재에 저항했다는 명분으로 정당성을 주장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자신들의 권력유지와 확대만을 생각해 온 것은 아닌가? 특히 시장경제체제 하에서 많은 혜택을 입어 재산을 증식하였음에도 말로만 평등과 분배를 외친 위선자들은 아닌가? 이 때문에 나는 잘못된 보수와 진보를 모두 가짜로 규정하고 있다.

이 세상에 완전무결한 사상은 존재할 수 없다. 특히 이념이란 희망사항을 나열한 것이기에 때로는 현실에서 많은 문제를 가지게 된다. 때문에 21세기 선진사회에서는 자유민주주의 체제하에서도 개인의 자유 혹은 공공의 이익을 우선해야 한다는 논쟁이 각 정당 간에 치열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 사회에서 정책들은 속칭 보수나 진보진영 할 것 없이 비슷하게 좋은 말은 다 나열하고 있다. 그리고 현실적으로는 정책을 벗어나 상대방 흠집 잡기에만 몰두하고 있다. 사회발전을 위해서는 정책적인 논쟁이 필수적임에도 한국 정치는 정책대결은 등한시하고 소모적 정쟁에만 몰두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 사회가 건전하게 발전하려면 개인의 자유와 공적 이익이 잘 조화를 이뤄야 한다. 정치적 이름표로 말하면 보수와 혁명 혹은 우파와 좌파도 함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정책으로 국민의 표를 얻어야 할 것이다. 지금처럼 가짜들의 망상에 근거한 국민 편 가르기는 국가를 파멸로 이끌 것이다. 따라서 지금이야말로 가짜 보수와 가짜 진보들을 몰아내는 정체세력교체가 절실하다. 가짜들이 스스로 정신을 차리지 않는다면 국민들이 앞장서서 이들을 몰아내고 망상에 젖어있는 한국정치의 퇴행적 편집증을 바로잡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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