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단체, 의결 강행에 유감 표명 및 경영개입 우려
[한국정책신문=이지우 기자] 국민연금 최고의결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가 횡령·배임 등 불법 행위로 기업가치를 훼손한 기업에 대해 이사 해임 등 경영참여 주주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된다.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기금위)는 27일 오전 서울 중구 플라자호텔에서 2019년도 제9차 회의를 열고 이러한 내용을 골자로 한 '국민연금기금 적극적 주주활동 가이드라인'을 심의·의결했다고 밝혔다.
이번 가이드라인은 지난해 7월 국민연금이 도입한 '수탁자책임에 관한 원칙'(스튜어드십 코드)의 후속조치로, 횡령·배임·사익편취 등으로 기업가치를 훼손한 '나쁜 기업'이 문제를 개선할 의지가 없을 경우 국민연금이 주주제안을 행사한다는 내용이 핵심이다.
국민연금은 주주제안을 통해 정관변경, 이사해임 등을 요구할 수 있게 된다.
다만 이날 의결된 가이드라인에선 당초 안에서 경영계와 시민단체 의견을 반영해 일부 수정됐으며 주주제안을 철회할 수 있다는 단서조항이 추가됐다.
먼저 경영계 의견을 반영해 기금위는 수탁자책임 활동사안 중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종합등급 하락' 사안과 관련해 '예상하지 못한 우려사안’에서 '중점관리사안'으로 변경했다.
이는 지난달 기금위에 올라온 가이드라인 방안에서 경영계가 ESG평가등급을 사전에 알 수 없어 필요 시 대응이 어렵다는 지적을 반영했다.
'예상하지 못한 우려사안'은 2단계를 거치는 반면 중점관리사안은 기업에 대해 더 신중하게 접근한다는 의미로 4단계를 거치기 때문에 기업 입장에선 더 장기적으로 대안을 찾을 수 있게 된다.
다만 수탁자책임활동 기간(1년 단위)의 경우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나 기금위의 의결로 기간을 단축하거나 바로 다음 단계로 이행할 수 있는 내용도 담았다.
기금위는 ESG 평가와 관련. 방식·내용 등을 확정하기 위한 준비기간을 거쳐 실제 평가는 2021년 이후부터 시행하기로 의결했다.
아울러 과도한 경영개입이 우려된다는 경영계 의견도 수용해 기업의 개선 수준 및 그 기업이 속한 산업 특성과 상황, 기업의 사정 등을 반영해 제안을 철회할 수 있도록 하는 예외조항도 추가했다.
기금운용위원장인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적극적 주주활동 가이드라인의 취지는 기업 경영에 개입하거나 간섭하려는 것이 아니다"며 "기업 가치를 높이고 주주가치를 제고해 국민연금의 수익성을 높이고자 하는 것이다"고 밝혔다.
또 "주주활동이 자의적으로 결정되지 않도록 원칙과 기준, 절차를 투명하게 규정해 시장의 예측가능성을 더욱 높이려는 것이 이번 가이드라인의 핵심이다"고 전했다.
한편, 가이드라인 의결을 두고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이날 입장문을 통해 "실물경제가 부진한 상황인데다 국가적 시급성이 없는 사안임에도 보건복지부가 실질적 내용 개선없이 무리하게 의결을 강행한 점에 대해 극히 유감스럽다"고 표명했다.
또 "독립성이 취약한 현행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 구조를 감안하면 앞으로 정부는 물론 노동계와 시민단체도 영향을 행사해 민간기업의 정관 변경, 이사 선·해임 등의 경영개입을 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됐다"고 우려했다.
배상근 전국경제인연합회 전무는 "가이드라인 수정안은 당초 원안을 문구상 각색하는데 그쳤다"며 "경영 개입과 지배구조 간섭이 늘면 신산업 진출과 일자리 창출에 매진해야 할 기업들의 경영 활동이 위축될 수밖에 없고 결국 경제 활력도 잃게 될 것이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