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 핵심 소재 대체재 있지만 '파우치' 등은 일본 의존도 커…BTL첨단소재 등 국내 기업 정부 지원 절실

<LG화학 홈페이지 갈무리>

[한국정책신문=한행우 기자] 한국 반도체 핵심 소재·부품에 대한 수출 규제를 강행하고 있는 일본 정부가 ‘경제 보복’ 확대 조짐을 보이면서 우리나라의 미래 성장산업 중 하나인 ‘전기차 배터리’ 분야도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제2의 반도체’로 불리는 배터리 산업의 경우 일부 소재가 높은 일본 의존도를 보이고 있어서다. 대표 배터리 3사인 삼성SDI, LG화학, SK이노베이션도 확전 가능성에 대비해 대책 마련을 고심하는 모습이다. 

국내 반도체 업계에서 불화수소 등 소재 국산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배터리부문 역시 향후 국가 미래 산업 보호차원에서 소재·부품 기술력을 보유한 국내 기업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24일 화학업계에 따르면 삼성SDI, LG화학, SK이노베이션 등 국내 배터리(2차전지) 3社가 일본의 수출 규제 확대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대응전략을 짜고 있다.

신학철 LG화학 부회장은 이달 초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제재 품목이 주로 반도체용 소재에 국한돼 현재로서는 전혀 영향이 없다”면서도 “다만 수출제약 품목이 확대될 가능성에 대해서는 단정할 수 없는 상황인 만큼 ‘그럴 수 있다’고 가정하고 시나리오 플래닝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또 “전지에 들어가는 양극재, 음극재, 전해액 등 핵심 부품은 일본 수출 제한 이슈가 생기기 전 공급처를 다변화했다”며 “일본 수출 제한이 확대된다고 해도 원재료 공급 지역 다각화를 통해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답했다. 

실제 배터리 4대 핵심 소재로 불리는 양극재, 음극재, 분리막, 전해액의 경우 이미 내재화하거나 대체재가 존재해 일본 수출 규제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지는 않을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에너지 전문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 역시 최근 발간한 ‘리튬이온 이차전지 재료의 일본 의존도’ 보고서에서 ‘4대 소재’의 일본 의존도를 ‘낮음’으로 분류했다. 에코프로BM, L&F, 포스코케미칼과 같은 한국 양극재 기업의 기술력과 공급력이 충분해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음극재 역시 BTR, 산산(Shanshan) 등 중국 업체들이 많고, 포스코케미칼 또한 음극재 사업을 하고 있어 일본 의존도는 크지 않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문제는 4대 핵심 소재를 제외한 일부 원료나 첨가제, 설비 등에 대한 일본 의존도가 상대적으로 높다는 점이다. 전해액의 원료가 되는 리튬염과전해액 첨가제, 양극재와 음극재를 접착시키는 역할을 하는 고품질 바인더, 동박 제조에 쓰이는 설비, 알루미늄 파우치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알루미늄 파우치는 배터리 원가의 12%를 차지하며 전기자동차 원가의 3~4%를 차지하는 3대 소재에 해당하지만 일본의 DNP와 쇼와덴코가 세계 점유율 70% 가량을 사실상 독점하고 있다.

SNE리서치는 “2차전지 산업에서도 일본 영향이 있고 일부 소재들은 의존도가 우려할 수준으로 높다”며 “한국 2차전지 산업의 발전을 위해서 소재 산업의 발전과 기반 기술의 연구가 병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파우치의 국산화 내재화가 시급한 이유다. 

업계 한 관계자는 “현재 파우치 시장의 공급 부족 상황과 대기업 생산 배터리가 일본산에 100% 의존하고 있다는 점 등을 봤을 때 파우치 국산화 필요성은 당장의 공급 안정화 목적을 떠나 향후 한국의 배터리 시장 장악, 2차전지 산업의 굳건한 우위를 점하는데 필수 요건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이미 중국의 파우치 개발 업체들은 파우치 산업의 공급 부족 상황을 예측, 앞서 행동에 나서고 있다는 부연이다. 

그러나 2차전지 소재, 특히 파우치 관련 국내 정책적 지원 및 연구 개발 지원은 부족한 상황이다. 최근 4년간 배터리소재 관련 국가과제는 양극재 530건, 음극재 618건, 분리막 246건, 전해액 140건으로 파악됐으나 파우치는 10건에 불과했다. 

파우치는 고도의 기술이 필요한 민감 소재여서 개발이 쉽지 않고 배터리 제조 기업과 파우치 필름 개발 기업의 밀착된 협력이 없으면 연구 개발 과정도 순조롭지 않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그럼에도 국내에서는 일본 기업 의존도를 탈피하려는 시도가 이미 10년전 시작돼 국내 기업인 희성화학에서 2009년부터 2차전지 파우치 개발을 기획했다. 현재는 BTL첨단소재가 사업을 인수, 최근 일본 기업 수준의 파우치 개발에 성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관건은 이런 기업들의 지속 성장을 위한 정책적 뒷받침이다. 

2차전지 핵심 제조설비인 전극제조장비 국산화에 성공한 씨아이에스 등도 배터리 소재 국산화와 관련해 주목받는 기업 중 하나다. 2002년 설립한 씨아이에스는 삼성SDI, LG화학 등 국내 전지제조 3사에 이어 중국 CATL, 일본 파나소닉 등 해외 업체에 장비를 공급하고 있다.

전고체 전지 핵심 소재를 개발해 성장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전고체 전지는 리튬이온전지의 액체 전해질보다 안정성이 높고 에너지를 더 많이 담을 수 있는 차세대 배터리다.

업계는 국가차원의 적극 지원을 기대하고 있다. 

노기수 LG화학 CTO 사장은 2차전지 분야에서 안정적이고 경쟁력 있는 원재료 수급과 차별화 기술 개발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노 사장은 지난 9일 한국공학한림원이 개최한 산업미래전략포럼에서 “국내 2차전지 업계는 우월한 기술력으로 경쟁력 우위를 유지하고 있지만 중국·유럽의 공격적 투자와 가격 정책, 자국 내 산업보호 정책, 기술격차 감소 등으로 경쟁력 유지가 어려워질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국가 차원의 소재·부품 확보 노력이 필요하며 정부 차원의 연구개발 체제 강화·육성·투자 노력도 요구된다”고 당부한 바 있다.

한편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역시 최근 “중소기업도 불화수소를 만들 수 있는데 문제는 대기업이 중소기업 제품을 안 사준다는 것”이라며 소재 국산화에 대한 아쉬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박 장관은 “만들 수는 있지만 품질 문제가 있다”는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반박에 대해서 “20년 전부터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함께 연구개발(R&D) 투자를 하면서 서로 밀어주고 끌어주고 했다면 지금의 상황은 어떠했을까”라며 “모든 것에는 축적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답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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